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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우리는 자살할 수밖에 없는가? 천주사 2019.03.10
첨부화일 : 없음
51, 우리는 자살할 수밖에 없는가?


농촌에는 가문이 심했습니다. 논밭이 너무 메말라 농작물이 제대로 활착하지 못하고 빌빌 꼬여가고 있었습니다. 콩을 심어도 싹을 내지 못하고 있던 터에 참으로 단비가 내렸습니다. 장마가 왔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마른장마라서 제대로 내린 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가 많이 내려도 문제지만 가문 것도 문제입니다. 인간사가 되었던 자연현상이던 문제라고 여겨지는 일은 다 인간에게 근심과 걱정을 안겨다 줍니다. 근심과 걱정이 생기는 것을 중생이라 했던가!

근심과 걱정 가운데서도 죽고 사는 일보다 더한 것이 없을 진대, 다른 사람의 부음(訃音)을 들으면 누구나 크게 놀라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비록 세간(世間)의 상정(常情)이긴 하지만,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것도 또한 세간의 상사(常事)여서 이제까지 한 사람도 능히 죽음을 면(免)한 자가 없었습니다. 하거늘 무엇이 족히 놀랄 만한 일이기만 하겠습니까!

다만, 헛되이 살다 부질없이 죽어가면서도, 도(道)를 알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이 더욱 놀랄만한 일이건만, 이 일에는 태연하여 전혀 놀라워하지도 않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며칠 전, 인기 있는 어느 한류배우가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작년인가, 매우 인기를 누리던 어느 여배우의 자살에도 세간에 많은 충격을 안겨 주어 허다한 말들이 많았습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허다한 죽음이지만 유명세를 타던 사람은 유독 죽음까지도 별스럽게 말들이 많았습니다.

생겨난 것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때가 되면 스스로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봄에 피어난 풀잎도 가을 겨울이 오면 말라져 사라지고, 쇠가 비록 견고하기는 하나 그것도 때가 되면 녹슬고 삭아서 사라질 것입니다.

우주가 비록 무한다고는 하나 이도 생겨난 것이라면 반드시 사라지고 말 것을.... 하거늘, 어찌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 죽음을 재촉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괴롭다고, 힘든다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이야말로, 이제 것의 자기 삶이 스스로 사람이기를 포기했던 아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었겠습니까? 죽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 자연의 일물처럼 때가 되면 스스로 사라지고 말 것인데도 말입니다.

삶과 죽음이란,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그 참모습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고 가는 현상이 서로 다를 뿐입니다. 이러한 실재하지 현상에 집착하여, 괴롭다고, 힘든다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죽이기 아니면 죽기를 재촉하는 어리석은 삶이 바로 도(道)를 알지 못하는 삶이겠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아침에 도(道)를 듣고 저녁에 죽어도 여한(餘恨)이 없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지나친 애착심은 자기 아닌 다른 수많은 삶(생명)들을 파괴시킵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삶(생명)도 파괴되는 것이고요. 자살은 그래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기 삶에 지나친 애착심이 자살을 부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자연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애착이 아니라 서로서로 공생하면서 공존합니다. 저기 저 산의 나무와 풀, 바위들을 보십시오. 서로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삶(생명)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흐르는 물은 흘러감으로서 청량한 스스로의 가치와 거기에 임한 뭇 생명들의 자양이 되어 공생하고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이 정부는 4대강에 보를 설치하여 막는 것이 물을 깨끗하게 하고 물 부족을 해소하는 길이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을 깨끗하게 하려거든 흐르는 물을 더욱 잘 흐를 수 있도록 하는 길(道=근본=원리)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부족한 것이 넘치는 것보다 오히려 그 패악(悖惡)이 적습니다. 우리가 지금보다 못살고 가난했을 때가 지금처럼 남아서 넘칠 때보다 더 순수했고 사회적 패악도 적었습니다.

만약에 물이 부족하다면 물 부족이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넘쳐나는 홍수는 더욱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삶에 대한 지나친 애착심은 탐욕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없는 한, 머지않아 우리는 우리의 탐욕심으로 말미암아 파괴된 그 생명으로 하여금 우리들의 삶도 함께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아니면 우리 스스로 자살이라는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다른 길을 모색할 지혜를 찾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자신의 애착심과 탐욕심이 우리들을 죽음으로 이끌게 될 것입니다.

2010.07.03.염화당 중홍.
천주사 : 중홍 21:20 new 집을 나간 자식이 소식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으로 나타났다면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우리 함께 스스로 자식이 되고 부모가 된 마음에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정말로 진지하게 남의 일이 아닌 참으로 자신의 문제로 받아 들여 생각해 봅시다. 이러한 생각들, 이러한 사색은 마음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답글 | 수정 | 삭제 중홍 21:25 new 내일 국가수에서 검사를 마치고 화장을 하여 천주사에 유해를 가지고 온다는데, 죽은 날짜를 알 수가 없어서 집나간 날짜를 계산하여 모레 화요일에 49재를 올리겠다고 합니다. 이런 부모의 마음과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자식의 마음을 우리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왜 죽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2019-03-10 21: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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