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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자살은 나쁘다 천주사 201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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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자살은 나쁘다



산승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그들 중엔 ‘나만 죽어버리면 모든 일이 해결되지 않겠어요’라며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자살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정신이 다 아찔해진다. 실로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우매의 소치라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불자의 첫 번째 계율로 불살생을 말씀하셨다. 그만큼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셨으며, 여기에는 남의 목숨을 뺐지 않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정신과 의사이자 현대 생사학의 창시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성숙시키기 위해 태어났으며, 죽음은 성장의 마지막 단계"라고 하였다. 죽음을 맞아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 반조하면서 이승의 인연을 아름답게 매듭짓고 회향하며 다음 생을 맞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면 죽음의 방식뿐 아니라 삶의 방식도 어리석은 것으로 귀결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은 너무나 귀하고 가치 있어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자살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위배될 뿐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도 어긋나는 반인륜적 살인행위이다. 주위의 누군가가 힘들어한다면 그를 질책하거나 엄중하게 책임을 묻기보다 그가 가진 문제가 무엇인가 배려하고 포용하는 분위기를 만들자. 따뜻한 손,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눈길 한 번이 주위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이것이 곧 모든 생명체를 살리는 복전이요 자비실천이다. 세상에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없다. 그 고통을 피해가도록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마음가짐, 곧 부처님 마음이다.


자살한 사람은 중음계(中陰界)로 간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세상을 저 세상 혹은 저승이라 한다. 불교에서는 명부(冥府)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이 자살한 사람은 명부(저승)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들 명부에 못 들어간 영가(영혼)들이 머무는 곳이 바로 중음계이다. 이런 영가들을 흔히 무주고혼이라고 한다. 소속이 없는 것이다. 이승도 아니고 저승도 아닌 소속불명의 세계인 것이다.

중음계는 춥고 배고프고 컴컴하고 공포스럽고 스산한 곳이다. 중음영가는 살아있을 때의 의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식욕, 색욕 등 온갖 욕망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니 죄업도 많이 짓게 된다. 거지도 그런 거지가 없다. 그래도 이 세상의 거지들은 중음계의 영가들에 비하면 천국(?)의 생활이다. 밝은 태양 아래서 추우면 양지로 가고 배고프면 얻어먹고 졸리면 자고 엄청나게 행복한(?) 생활을 한다. 어쩌다 마음을 잘 먹거나 운이 좋으면 스스로 거지 신세를 면할 수 있는 길도 있다.

그러나 중음계의 영가들은 누가 천도시켜 주거나 명부에서 정리할 때까지 기약 없이 컴컴하고 춥고 배고프고 공포스러운 환경 속에서 외롭게 생을 유지해 가야 한다. 몇 백년이 될 지 몇 천년이 될 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싫어 자손에게 빙의하게 되면 자손들은 그 무서운 온갖 영가장애(자살, 횡사, 중병 등)를 받아야 한다. 죽어서까지 이렇게 자손들에게 해를 끼쳐서야 어디 부모라 할 수 있겠는가? 어찌어찌하여 겨우 중음계에서 빠져나오더라도 또 삼악도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으니 첩첩산중이다.

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를 삼악도(三惡道)의 세계라 합니다. 지옥(地獄)은 죄업을 많이 지은 영가가 가는 곳이다. 중음계(中陰界)에서 나온 영가도 대부분 지옥으로 가게 된다. 지옥은 죄업이 무거운 순서대로 극무간지옥, 무간지옥, 중지옥, 하지옥, 대기지옥의 다섯 등급으로 구분한다.

지옥에서 영가들이 받고 있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실 《지장보살본원경》에도 많은 지옥과 그 벌 받는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 지옥은 그보다 더 많고 벌의 종류도 다양하다고 한다. 우리가 들어본 지옥만 해도 화탕지옥, 한빙지옥, 독사지옥, 분뇨지옥, 흑암지옥, 도산지옥 등등... 이름만으로도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여기서는 지옥의 벌 받는 실상을 그대로 옮기지 않으려 한다. 혹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옥 영가의 몰골을 보면 부처님께서 눈물을 흘리실 정도로 처참하다는 것만 말해 둔다.

그런데 더욱 문제는 지옥의 벌 받는 기간이 보통 겁(劫)의 단위로 정해진다는 점이다. 겁은 기약 없는 장구한 세월을 말한다. 지옥의 벌이 끝나면 보통은 축생으로 간다.

2009.05.29
천주사 : 중홍 21:12 new 왜 죽으려고 애를 쓰는가? 살려고 애를 쓰야지.... 죽는 일은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죽는다. 이것은 이법이고 만물의 법칙이다. 그러데도 우리 주위에서는 죽지 못해 애를 사람들이 있음을 본다. 그래서 자살이라는 극도의 방법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있음을 본다. 나는 그런 소식이라도 듣게 되면 깊은 시름에 잠기곤 한다. 죽는 방법만큼 죽는 노력만큼 사는 일에 애를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나도 어린 소실절 한 때, 그런 충동에 빠져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자살에 대한 감회가 깊다. 그 때 한 생각 돌이킨 것이 지금까지도 나를 사는 일에 몰두하도록 만든 원동력이 된 것이라 생각한다. 죽음 답글 | 수정 | 삭제 중홍 21:22 new 죽음이란 때가 죽지 않으려고 애를 쓰도 죽기 미련이다. 누가 이것을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혹자가 말하기를 살 수가 없어서 죽는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에써 자살가지 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말이다. 만약 살 수가 없다면 살 수 없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그대로 두면 될 것을 말이다. 죽는 일도 사는 일도 마음이 하고 마음이 결정을 내린다. 왜 우리는 스스로에게서 일어나는 그 마음, 그 생각, 그 망상에 빠져서 한 발자욱도 바깥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생각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하는 일! 이것에 온 인생을 다 바치고 힘쓸 일이다. 이것은 자살보다 훨씬 가치있고, 사는 일보다 더 필요하고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2019-03-08 2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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