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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이 다시 주신 생명 천주사 2007.04.19
첨부화일 : 없음
[신행수기]관세음보살이 다시 주신 생명-생사의 절망 끝에도 관음은 계셨습니다

신화규(가정주부)


내소사에 들어서는 순간, 천여 년을 거슬러 올라온 것처럼 세상살이의 시끄러움은 없다. 일주문을 지남과 동시에 날려 보내지 않았나 싶다. 이 곳의 모든 것들은 기본이 몇 백년이다. 그래서 그런지 낯설지 않고 정다운 느낌, 오래 전에 와 봤던 곳에 다시 온 느낌이다. 혹시 전생에 이 곳에서 수행하는 복을 누리지는 않았었는지….

유명한 대웅전의 문살무늬, 천년된 나무의 웅장함, 그런 것들을 일일이 따지지 않더라도 그냥 편안하고 좋은 느낌, 이 자리가 바로 내 자리가 아닐까 싶다. 도량석 도시는 스님의 목탁소리에 잠을 깨어 상쾌한 공기와 천년가람의 숨결을 느끼며 들어선 빛바랜 대웅전의 새벽예불.

수술 후 처음으로 혼자 나선 여행길이다.


1.극심한 두통…알고보니 뇌종양

포교사가 된 지 1년이 되어가지만 아직 제대로 되지 않은 공부에 사람들 앞에서 포교사라고 말하기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끝이 없기만 한 부처님 공부, 하지만 운명적인 이 길이기에 나는 기꺼이 이 일을 천직으로 알고 공부하고 싶다.

관세음보살님께서 다시 주신 나머지 인생은 회향하는 의미로 한 알의 의미 있는 씨앗의 역할을 하고 싶다.

6년 전 전철역 계단에서 갑자기 어지럽고 다리에 힘이 풀려 굴러 떨어진 후로 매일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너무 심해서 한 움큼의 진통제로 생활하다가 그것도 안 되자 새벽이면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술을 마시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엄마 역할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병명을 몰라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직전, MRI를 찍고서야 뇌종양이라는 병으로 판명이 되었다. 급히 수술하지 않으면 혹이 너무 커서 죽는다는 담당의사의 말에 그냥 담담하게 말했다.

“선생님 수술 한 번 하나요? 아니면 두 번 하나요?”

뇌수술은 성공해도 기본이 두 번이고 두 번 하고도 결국은 죽은 가까운 친구의 남편을 지켜보았었기 때문에 두 번의 수술이라면 하지 않고 그냥 전국에 있는 기도처에서 원 없이 기도나 하다 죽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때 당시의 상황은 혹이 너무 커서 신경을 누르기 때문에 모든 기능이 정지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먹을 수도 없고 대소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까지 됐었다. 팔과 다리가 마비되어 걸을 수도, 집안일도 할 수 없었다.

옷을 뒤집어 입거나 거꾸로 입어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판단이 안 될 정도로 심한 상태였다. 그 때의 심정으로는 그냥 정확한 병명을 알았으니 됐고, 그냥 그대로 죽어도 이 고통만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제부터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이곳에서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래서 노느니 염불한다고 108염주를 손에 들고 돌리기 시작했다. ‘관세음보살님 살려 주세요’라는 말도 ‘아이들을 부탁해요’라는 원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무심의 마음으로 ‘저는 인연 따라 따르겠습니다. 관세음보살님 뜻대로 하세요.’ 하는 마음으로 염주를 계속 돌렸다.

그 순간 가슴 속으로 치닫는 무엇인가를 느꼈다. 가슴가득 차지한 그 무엇! 그 후로는 두려움도 고통도 없어졌다. 막연한 두려움에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 가족들이 계속 설득하고 있던 중이었다.

제일 두려운 것은 수술 후 얼마일지 모르는 막연한 시간 동안 여러모로 나로 인해 고통 받을 가족들을 생각하니 ‘그냥 이대로 조용히 눈감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었다.

염주를 돌리다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선명한 관세음보살님께서 금빛 찬란하게 나타나셔서 땀을 흘리며 더워서 쩔쩔매는 나에게 시원한 냉기를 주시며, “덥지? 내가 시원하게 해줄게 걱정하지 마라.” 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것이었다. 그 후론 아무 두려움이 없이 즐겁게 생활할 수 있었다.

“관음보살님, 뜻대로 하세요”

아이들 선생님께도 전화해서 숙제나 준비물이 제대로 되지 않더라도 엄마가 없어서 그러니 이해 해달라는 부탁까지 해놓고 이것저것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빈 자리를 최대한 줄이려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수술을 위해 머리를 깎았지만 주위사람들에게 “두상이 이쁘냐, 미우냐?”고 농담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다니던 절의 스님과 신도들이 오셔서 어떤 위로의 말을 할지 몰라 쩔쩔매실 때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반드시 살 거고 다시 살아나면 부처님 일을 할 거예요.” 하고 말씀드렸더니, “보살님은 앞으로 공부 많이 하실 거예요.” 하신다.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 그 때는 몰랐었다.

“신화규씨 정신이 드세요. 제 말을 알아 들으시겠으면 눈을 떠 보세요.” 그 말을 듣고 눈을 떴다. 여러 줄로 묶여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나를 둘러싸고 서있는 많은 사람들, 담당의사들과 간호사, 가족들이었다. 눈을 뜬 나에게 의사선생님들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가’ 하는 판단을 여러 가지로 시험해보았다. ‘이름이 뭐라든가, 오른손으로 악수를 하자든가, 왼발을 들어 보라든가’라는 물음에 평상시와 같이 웃으면서 자신 있게 대답하고 하라는 대로 정확하게 하자 모두들 살았다고 박수를 치며 좋아하셨다.

그 때까지는 그냥 원래 예상 했던 대로 6시간의 수술 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 곳은 신경외과 중환자실이었고 나는 20시간의 생사를 가르는 대수술 끝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감동은 남다른 것이었던 것이다.

남편의 말로는 예상된 6시간이 지나고 12시간이 지나도 수술이 끝났다는 불은 안 꺼지고 아침 8시에 첫 번째로 들어간 사람이 저녁때가 되도 소식이 없더니 새벽이 되자 담당의사가 가족들을 소집해놓고 지혈이 안 되니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단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은 달리 방법이 없어 자기는 부처님도 믿지 않고 하나님도 안 믿고 기도 할 데도 없어서 나에게, “당신은 할 수 있다. 당신은 할 수 있으니 당신의 의지로 꼭 일어나”라고 기도했단다.

2.수술대 위의 기적

수혈이 40봉 이상은 위험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서 계속 70봉 정도의 수혈을 하고 있을 때 지혈이 되었고, 의사선생님은 자기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서 기다렸을 뿐 말로만 듣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놀라워하셨다.

내가 부처님을 믿는 것을 모르니까 남들이 말하는 신이라는 게 정말 있나 보다고 해서, 나는 조용히 자신 있게 “이건 신의 기적이 아니라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천주교를 믿는 시어머님께도 기독교를 믿는 친구에게도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라고….


3.관세음보살님 차라리 저를 데려가세요



나는 대수술을 받았음에도 전혀 아픔을 느끼지 않았다. 뇌수술 후의 중환자실은 마치 아비지옥을 연상할 정도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거의가 혼수상태의 환자들로 소리소리 지르고 심지어는 욕을 하고 몸부림 칠 정도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거의가 진통제로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는데 나는 전혀 아프지 않다는 사실이다. 수술실에서 옮겨진 뒤로 진통제 한 대 맞지 않고 삼매에 든 것 같은 편안한 마음과 표정으로 있었다.


4.아비규환의 중환자실


그렇게 중환자실에서의 생활은 시작됐고 그 곳에서 산소호흡기와 여러 개의 줄로 이어진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새벽예불과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는 일뿐이었다. 하루에 적어도 두 명씩은 죽어나가고, 새로 수술하고 와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 몇 달째 정신이 안 들어 울면서 하소연하는 보호자들, 나는 지옥을 미리 와본 느낌이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도 금할 수가 없었다.

‘부처님 법만 미리 알았다면 이토록 고통도 느끼지 않고 편안하고 환희심 속에서 병원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신경외과의 중환자실은 24시간 긴장상태이기 때문에 불을 끄지 않는다. 달리 잠자는 시간이 없다. 잠을 잘 수도 없고 잠도 오지 않아 새벽 4시쯤 되면 물을 놓고 기억나는 대로 예불문과 천수경 반야심경을 하고 관음정근을 하고 그 물을 마셨다. 간호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혼자 모든 걸 해내려고 애썼다.

수술결과는 아무 것도 보장 받을 수 없었다. 팔다리의 마비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될지 수술 후에도 중풍환자처럼 팔다리 마비상태로 그냥 지내야 될지 어떤 후유증이 올지 다시 재수술을 해야 할지 모든 게 미지수였다. 하지만 나는 매일 매일이 즐겁고 감사했다. 며칠 만에 멀겋게 나오는 미음에도 감사하고 친절한 의사선생님과 간호사, 면회 와서 걱정해주는 가족 친구들 남들의 고통과 괴로움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신 관세음보살님 모두가 감사했다.

아직은 어린 둘째딸이 어린 나이 때문에 면회가 되지 않자 울다, 울다 그냥 갔다고 친정엄마가 전했다. 갑자기 엄마가 걷지도 못하고 이상한 짓을 많이 해서 엄마 옆에서 심부름과 걱정을 많이 했는데, 너무나 급하다고 해서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얼굴도 못 보고 당부도 못 하고 갑자기 와버렸다. 아이들 때문에 나는 내 힘과 의지로 일주일 만에 나가리라 작정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기도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했다. 그 결과 너무도 빨리 회복되고 있었다.

중환자실에는 여러 개의 침대가 굉장히 넓게 분포돼 있는데, 나의 가장 가까운 쪽의 침대에 있는 50대 초반 정도의 아주머니 환자는 8개월째 혼수상태로 있었다. 하루 종일 엄마를 찾으며 부른다. 아마 무의식 중에도 엄마만 있으면 이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리라는 생각에서인가 보다. 밥도 안 먹고 약도 안 먹고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산소호흡기와 뇌로 연결된 여러 줄 중 하나라도 빠지면 위험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온몸을 꽁꽁 묶어 놨다. 그러니 면회시간에 온 열 몇 살짜리 아들과 스물이 갓 넘은 듯한 딸은 엄마를 붙들고 “엄마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라며 울다, 울다 간다. 그 어린것들이 막대한 병원비를 감당 못해 의사선생님께 그냥 퇴원 시켜달라고 하소연한다.

그 말을 듣고 너무나 울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했다. ‘관세음보살님 차라리 저분 대신에 저를 데려가세요. 저는 부처님 법 속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고 또 죽는다 해도 어떤 방법으로든 부처님 법 속에서 살 테니까 저분 대신에 저를 데려가 주세요.’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순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는지 그 아주머니에게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누워서 꼼짝할 수는 없으니 천장을 본 채로 소리를 질렀다.

“아주머니 제 말 잘 들으세요. 제 말 잘 들으면 엄마한테 가실 수 있어요. 지금처럼 밥도 안 드시고 약도 안 드시고 간호사선생님 말씀 안 들으시면 절대로 낫지 않아서 엄마한테 갈 수 없으니 꼭 제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50대 무의식 환자의 “엄마, 엄마”

그 아주머니께서 듣든지 못 듣든지 큰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아주머니께서 그 때부터 식사도 하고 약도 고분고분 드신다는 것이었다. 그 후 갑자기 일반 병실로 옮겨도 좋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중환자실에서 6일 만에 일반병실로 옮겼다. 그 후 그 아주머니의 상태를 끝까지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잘 치료가 됐으리라고 생각한다.

일반병실에 와서 재수술 들어가며 불안해하는 여대생에게 팔에 있던 합장주를 껴주며 기도해 주었고, 치매로 불안해하는 할머니께는 10년간 지닌 108염주를 쥐어주며 돌리는 법을 알려드렸을 때 편안해 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이런 인연들을 맺게 해주신 것에 대해 부처님께 감사드렸다. 하지만 나의 너무나 부족한 공부를 절감하였고 여기서 퇴원하면 부처님 공부를 제대로 해보리라 결심했다.

그 이후로 2년간의 불교대학공부, 그 후에 다시 승가대학부설 김포불교대학에 재입학하여 포교사가 되었다. 다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며 지금은 제대로 된 포교사가 되어보려고 연수와 기도, 군법회로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그 때 만난 관세음보살님은 지금도 매월 초하룻날이면 홍련암의 파도소리에 어우러지는 비구니스님의 간절한 염불소리와 함께 만난다. 병실에서 혼자 물 한 잔을 놓고 올리던 새벽예불을 이제 홍련암을 비롯해 직지사, 법주사 등 전국에 있는 모든 절에서 삼라만상을 깨우는 범종소리, 목탁소리와 함께 올리고 있다.

5.불교대학 입학…보살행 서원

언제까지 이 행복한 시간이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남겨진 시간동안 여러 방편으로 부처님법을 펴고 싶어 방송대 국문과에도 입학해서 하루를 48시간으로 쓰고 있다. 나를 걱정해주시는 분들은 건강을 염려하지만, 아직은 재발의 위험도 없이, 물론 약간의 후유증으로 힘들기는 하지만 그 또한 기도정진을 게을리 말라는 뜻으로 알고 함께하련다.

어디 어느 곳을 가나 부처님 법음이 가득한 이 도리를 보다 많은 이들이 깨달아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실천하는 진정한 불자의 길을 가게 해달라고 발원해본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조금은 절절히 느껴 형식적인 위로가 아닌 부처님 마음의 끝자락이라도 흉내 내며 가슴 아파할 수 있게 됐다.

이제 10월 첫째 주에는 매월 나가는 군법회의 창립법회행사, 둘째 주의 해인사 보살계 행사, 셋째 주의 적멸보궁 철야기도, 넷째 주의 선운사 문학기행 등 바쁜 일정이지만 만나는 사람 모두가 한 분 한 분 부처님이라 생각하며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드린다.

단풍이 지고 있는 초겨울에 나는 다시 또 새로운 부처님을 만나러 떠날 것이다.


월간불광 창간 30주년 기념 신행수기 공모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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