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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님의 가피와 영험록 모음 천주사 200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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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의 가피로 목숨을 건진 한용운 스님

(일타스님 글)

승려요 독립운동가요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스님은 1905년 설악산 백담사로 출가하여 대부분의 시간을 관음기도처로 이름 높은 오세암(五歲庵)에서 보냈습니다.

스님은 이 오세암에서 불경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틈틈이, 관세음보살님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1910년, 일본이 이 나라를 강제로 점령하고 국권을 찬탈하자, 망국의 울분을 참을 길 없었던 스님은 1911년 가을, 행장을 수습하여 표연히 만주로 떠났습니다.

스님은 만주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그 곳에 사는 우리 동포들을 만나 막막한 나라의 앞길을 의논하고 서로를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간도지방에 도착한 스님은 동포들을 만나 이역(異域)의 생활을 묻기도 하고 고국의 사정을 전하기도 하였으며, 그 곳의 독립지사로 협력하여 동포를 보호할 방법과 독립운동의 방향등을 의논하였습니다.

그리고 민족투사를 양성하는 의병학교를 순방하여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깨우쳐 주고 또 격려하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통화현(通化縣)에 갔을 때입니다. 그곳은 이상한 불안이 감격과 희망속에 뒤범벅된 묘한 분위기에 싸여 있었습니다. 조밥으로 연명하면서도 밤이면 관솔불을 켜 놓고 천하 대사를 논의하는 한편, 화승총을 가지고 조련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본국에서 온 사람에 대해 처음에는 불안으로 감시했고, 그 다음에는 의심으로, 마침내는 목숨을 빼앗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어찌된 영문인지 한용운 스님도 그 곳에서 정탐꾼의 혐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만주 통화현에서도 한참을 들어간 두메산골에서 자고 나오는데, 스님을 바래다 준다며 20세 전후의 한국 청년 3인이 따라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길은 차츰 산골로 접어들었고, 일행은 굴라재라는 고개를 넘게 되었습니다.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우거져 대낮에도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았고, 길이라고는 풀섶에 나무꾼들이 다니는 미로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스님의 뒤를 따라오던 청년 한 명이 총을 쏘았습니다. 순간 귓전이 선뜩함을 느꼈고, 연이어 두번째 총소리가 나자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또 한 방의 총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이때 스님은 그들을 돌아보며 잘못을 호령하고자 목청껏 소리를 질렀으나, 성대가 끊어졌는지 혀가 굳어졌는지 전혀 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는 할 말을 다했는데 말소리를 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동시에 피가 댓줄기처럼 뻗쳤고 격렬한 아픔이 전신을 휩쓸었습니다. 그러다가 심한 통증이 사라지면서 지극히 편안한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지금이 생(生)에서 사(死)로 넘어가는 순간이구나. 이제 죽는구나.'
이윽고 편안한 감각까지 사라지면서 스님은 완전히 혼절하여 죽음의 상태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행했던 신앙이 환체(幻體)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바로 관세음보살이 나타난 것입니다.
'아, 아름답구나. 기쁘구나.'

앞이 눈부시게 환해지면서 절세의 미인,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어여쁜 여인이 섬섬옥수에 꽃을 쥐고 누워 있는 스님을 향해 미소를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총을 맞고 누워 있는 사람에게 미소를 던지다니!'
순간 스님은 달콤하면서도 분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그때 관세음보살께서 꽃을 던지며 말했습니다.

"네 생명이 경각에 있는데 어찌 이대로 가만히 있느냐?"

그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린 스님은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니 날은 어두웠고 피는 도랑이 되어 흘렀으며, 총을 쏜 청년 가운데 한 명은 짐을 조사하고 다른 한 명은 확인 살인을 위해 큰 돌을 들고 스님을 내리치려고 했습니다.

스님은 황급히 일어나 그 자리를 겨우 피하고, 피를 철철 흘리며 오던 길로 되돌아갔습니다. 핏자국을 보고 뒤쫓을 그들이 자신들의 마을 쪽으로 가면 안심하고 천천히 쫓아올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이렇게 한참을 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어떻게 넘었는지도 모르게 산을 넘어 청(淸)나라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갔습니다.

그 곳의 마을사람들은 마침 촌장(村長)집에서 계(契)를 하고 있는데, 피를 흘리며 들어오는 스님을 보고 지혈을 시켜 주었습니다. 그 때 총을 쏜 청년들이 쫓아왔고, 스님은 그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총을 쏠테면 쏘아라."
그들은 어쩐 일인지 총을 쏘지 않고 달아났으며, 스님은 귀 뒤와 몸에 박힌 총알을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아야 헹습니다. 의사는 "매우 아플테니 마취를 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스님은 굳이 마다하였습니다. 생뼈를 깎아내는 소리가 빠각빠각 나는 수술인데도 스님은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고 끝까지 견뎠습니다.

"이 사람은 인간이 아니고 활불(活佛)이로다."
치료를 다 마친 의사는 감탄하여 치료비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용운 스님은 평소 관세음보살을 깊이 섬겼기 때문에 절대 절명의 순간에 이르러 큰 가피를 입었던 것입니다.

이후 스님은 불교개혁운동과 독립운동을 하면서 초인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정신력의 힘이 아니라, 총을 맞은 그때 관세음보살의 가피 아래에서 생사를 초월한 힘을 얻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한용운스님의 경우처럼 평소의 섬김이 위기를 구하고 업을 녹이는 근원적인 힘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우리 모두 올바른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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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암 큰스님이 직접 겪으신 관음 가피력


이 이야기는 혜암 큰스님께서 직접 하신 이야기입니다.
여기 혜암 큰스님은 얼마전 열반에 드신 종정스님이 아니십니다.

근대 선종사에 큰 획을 긋고 오래전에 열반에 드신 큰 스님이십니다.
간단히 혜암스님에 대해 말씀드리고 글을 쓰고자 합니다.

혜암스님은 1886년에 황해도에서 3대독자로 출생하셔서 1900년
15세때 보암스님을 은사로, 금운스님을 계사로 득도하셨다 합니다.
만공스님으로부터 전법게를 받으셨으며, 1984년 100세의 고령으로

미국 서부에 있는 능인선원의 봉불식에 참석, 대한항공 역사상
가장 고령 탑승객으로 기록되기도 하셨습니다.
1984년말에 설립된 덕숭총림의 초대방장으로 초대 되셨으며
1985년 101세(법랍89세)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신유년 여름이었다. 그러니까, 내가(혜암스님) 금강산 마하연에
있을때의 일이다. 대중이 몹시 웅성거려 나가보니, 얼굴이 잘생긴
어떤 청년이 목에 연두창이 터져 피고름과 함께 마치 송장이
썩는 것처럼 냄새가 지독하였다. 그래서 내가 그를 보고
"병원에 입원이나 하지 그 몸으로 뭐하러 다닙니까?" 하니

"예 제 직업이 바로 의사입니다. 영국에서 <곱살바>라는 부인이
공부를 시켜 그분을 모시고 병원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병이 생긴뒤로 나는 물론 그 부인도 병을 고칠 수없어
이제는 완전히 체념하고 폐인으로 떠돌아 다닌 실정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기독교에 이런 말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 환자가 기독교인이였는 듯함)
부처님 말씀에는 <한정된 목숨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병에 걸린 것은 신심이 철저하고 독실하면 고칠 수 있다.>
하였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해 보겠습니까?" 하니,
그는 "이미 버린 목숨이니 하다가 죽어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그를 스님으로 만드니 대중스님네는 냄새 때문에
같이 못있겠으니 데리고 나가라고 야단들이었다.
나는 그런 비방과 구설을 다 참고 내 방을 비워주면서 그에게 말했다.

"그대는 이대로 살기 틀렸으니, 일심으로 <관세음 보살>을 지성껏
불러라. 병을 고치고 못 고치는 것은 오직 그대 정성과 결심에 달렸다."
고 일렀다.

한동안 나는 그의 동정을 살펴 보았다. 그는 밤을 새워 가며
눕지도 아니하고 오직 일념으로 <관세음 보살>만 부르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은 반드시 병을 고칠 수 있겠다고 생각 했다.

한 반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꿈을 꾸었다.
소복으로 단장한 젊은 부인이 어린애을 안고 있는데
그 애는 자꾸만 <아미타불>을 부르고 있었다.
꿈 속에서도 하도 신기하여

"어쩌면 저렇게 어린애가 염불을 잘 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그 부인이 "왜 귀찮게 구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는 부인에게 다가가서 그 병을 고쳐 주십사 하고간청을 하였다.
그때 그 부인은 손가락으로 그의 목을 꼭 눌렀다. 그러자 마자
달걀 같은 것 두개가 목에 축 늘어져 달려 있는 것 같았다.

부인은 가위로 그것을 자르려 하였다.
그러자 그가 말 하기를 "그 가위를 잘 소독하고 잘라 주십시오"하니
부인은 "너는 지금까지 의사 하던 버릇으로 그런 소리를
하지마는, 이 가위는 원래 독이 없는 것이다." 하고,
그 혹 같은 것을 잘라 주었다.

그는 다시
"이 겨드랑의 것도 잘라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그것은 아직 그대로 두어라." 하였다. 그리고는 이내꿈을 깨었다.

그뒤로 그 종기는 피고름이 차차 멎고 병이 아주 나았다.

이렇게 병을 고친 그는 내 첫 상좌로 법명은 동일(東日)로
지금은 이북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영험담은 밀알 출판사에서 나온
"벼랑끝에 서서 길을 묻는 그대에게"라는
큰스님의 법문책에 나와있는 글입니다.


혜암 큰스님의 오동송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어묵동정> 한마디 글귀를 누가 감히 손댈 것인가.
내게 말도 침묵도,
움직임도 움직이지 않음도 여의고
한마디 이르라면,
곧 <깨진 그릇은 서로 맞추지 못한다.>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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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님의 중매


근세 조선 순조 7년(1819)때의 일이다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에 몹시 가난한 집이 있었다

이 집에는 나이가 30 살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윤덕삼(尹德三) 이라는 노총각이 있었는데 70 을 넘은
부모를 모시고 나무장사를 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매일 첫 닭이 울면 나무짐을 짊어지고 나서는데
나무장사를 할지라도 촌 사람을 상대로 할 수가
없는 까닭으로 서울장안에 들어가 도시사람을 상대로
하여야만 팔기가 쉬웠다

서울을 왕래하자면 구파발을 거쳐 서대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편리하나 서대문 거리는 경쟁이 서로 심하여
발 붙일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의 서대문 밖 무학재 너머에 있는
홍제동에서 왼편으로 개천을 끼고 세검정을 향하여
넘어가기가 어려운 자하문을 넘어 들어가야만 쉽게
팔고 돌아오게 된다

그러므로 매일같이 이길을 택하여 다녔다
농사 한마지기도 없이 춘하추동에 나무장사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하다가는 만년 총각으로 장가를 들지 못하고 늙을 일을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슬퍼졌다 더우기 그는 3대 독자
외아들이였다

만일 정말로 장가를 못가게 된다면 자손이 끊기게 되므로
부모님께 참으로 죄송한 일이었다
윤덕삼은 이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그는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나 별도리가 없었다

어느날 그는 나무짐을 지고 세검정을 향하여 가는데
귀에 서투른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다리도 아프고하여
나무지게를 내려놓고 바라보니

옥천암이라는 절에서 들려오는 것있었다 그런데 그 절 아래
개천옆에는 높이 수십척이 되는 바위가 문도 없는 편각속에
있는데 거기에는 크게 부처님의 형상을 조각한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부처님 앞에서 수십명의 여자신도들이 스님들과 함께
향불을 피우고 제사지내듯 메를 올리고 절을 한고 있었다

그 전에도 이를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으레 스님들이 하는
것이거니 하며 무심히 지났으나 이날은 이상하게도 의심이 생겼다

"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저런 것을 할까?
저렇게 하면 돌부처가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 주는 것인가?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똑똑한 사람도 마음데로 못하는 일을

한 걸음도 걷지 못하는 바윗돌이 무슨 재주가 있어 사람들을
도와준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과 회의에 잠겨있는 동안에 할머니들이 불공을
마치고 건너온다 덕삼은 한 노인일 향해 물었다

"저 바위에 새겨놓은 부처님은 누구며 할머니들은 무엇 때문에
거기에 대고 절을 하고 빕니까?"

"이 총각 나이는 많이 먹었어도 무식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구먼
저 바위에 새긴 것은 해수관음이라는 관세음보살이신데
이 어른은 동해,서해,남해할 것 없이 모든 바다 언덕 위에

계시다는 보살님일세 이곳은 바다는 아니지만 개천가인 까닭으로
멀리 바다에 가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인연을 맺으라고
해수관음불상을 새겨 놓았지

그런데 영험이 대단하여 저 보살님께 정성을 들이면 틀림없이
소망을 다 이룬다네".

덕삼은 이 말을 듣고 다시 물었다

"그렇지만 돌부처가 무슨 신통이 있어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 주겠습니까?

"그것은 모르는 말.돌부처라도 그냥 바위가 아니고,부처를
새겨 모신 바위이기 때문에 사람이 이름을 부르고, 지성으로
마음을 모아 빌면,부처의 신령이 천리 만리라도 걸림없이

오셔서 정성을 받고는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일세.
그러기에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정성이
부족하고 믿는 마음이 부족하면 그런 사람에겐 그저

돌 바위만 보이지만, 마음이 참되고 정성이 지극하면
모든 것이 모두 부처이고,드는 것이 모두 불경소리인지라.

무정한 돌도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변신해 나타나는 것일세.
그러므로 소원을 이루고 이루지 못하는 것은 그 돌부처께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의 정성과 신심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일세"

"참으로 그럴까요?"

"그렇고 말고. 이절에 다니는 신자가 수백명인데 소원을 이루지
못하는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거야
새상에 무슨 할 일이 없어서 갖은 고생을 해가며 이 험한
산골짜기에 올라와 정성을 드리겠는가 생각을 해 보게.

그러기에 여자들은 마음이 간절해서 철저히 믿기 때문에
소원을 이루기가 쉽지만 자네같은 총각은 남자라 마음이
엇갈리어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빌어도 건성으로 빌 것이니 어려울 것일세. 그럼 난이만
가네"

노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어데론가 가버렸다
온갖 고생을 거듭하고 쪼들릴대로 쪼들린 윤총각은 귀가
번쩍 트이는 것 같았다.

그 다음날부터 그는 이 곳을 지날 때에는 반드시 길가에
나무짐을 버티어 놓고 건너가서 해수관음에게 수십 번씩
절을 하고 마음속으로 축원하였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이시여!
어서 제가 장가를 들어 자손을 보고, 부자가 되어서
나무장사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그러나 예배만으론 시원치가 않아 점심밥으로 먹을 도시락을
나무짐에서 꺼내어 가져다가 올리고 다시 절을 하였다.
도시락이라 하여도 보리밥 아니면 조밥이요 게다가
된장 덩어리가 끼어 있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도 가난뱅이가 이러는 것은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윤덕삼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나무짐을 지고 오갈때마다
그와 같이 하였다.

이렇게 백일을 하고 나니, 비록 돌부처라고는 하지만
어머니 마냥 친해져,보기만해도 다정함을 느꼈다
이제는 부끄럼없이 처다보고 농도 하고 어리광을

부릴 수 있을것 같았고,그만하면 자기 소원도 들어
줄 만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생활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모두가 허사인듯 야속한 마음도 가끔 들었으나

자기의 정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언젠가는 자기의
소원을 들어 주리라 믿었다.그럭 저럭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날이 되었다.

그 날도 나무를 성안에 팔고 돌아오는 길에 윤덕삼은
해수관음에게 들렸다.그런데 마침 비가 쏟아져 나갈
수가 없었다

덕삼은 문도 없는 관음각에 홀로 앉아 있다가 심심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여 '우물꼬누'를 커다랗게 그려놓고
관세음보살님께 꼬누를 두는 내기를 하자고 말했다.

"관세음보살님,이제 저와 같이 내기 꼬누를 둡시다.
저는 이길 자신이 있으니,만일 제가 이기면 관세음보살님이
그 댓가로 저의 소원을 들어 주셔야 합니다"

덕삼은 꼬누를 두기 시작했다. 우물꼬누란 첫 수에 이기고
지는 것이 결정되는 것이다. 덕삼은 조약돌 두 개를 주어다가
하나는 제 것이라 하고,하나는 관세음보살님 것이라 몫을 정해
놓고,혼자 천진스럽게 두었다.

"그럼 제가 먼저 두겠습니다"

첫 수에 관세음보살님을 이겨 버렸다.그리고 관세음보살님을
우러러 보면서 기원드렸다.

"관세음보살님! 분명히 보셨지요? 꼬누는 분명 제가 이겼습니다.
그러니 내일이라도 속히 저의 소원을 꼭 성취시켜 주셔야 합니다"

덕삼은 이렇게 말을 하고 비가 그치자 지게를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꿈에 거룩하게 생긴 늙은
부인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해수관음을 모시고 있는 옥천암에서 온 보살이다.
너의 정성이 하도 갸륵하여 너에게 도움이 될 말을 일러 주러
왔다.

너는 내일 첫 새벽 닭이 울 때에 나무짐을 지고 떠나서
밤이 새기 전에 자하문 밖에 가서 기다리고 있거라.
그리하여 문이 열리면,첫번째로 나오는 여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거라.

'남녀가 유별한데 먼저 말하기는 미안하지만,어디로 가시는
누구이신지는 모르지만 가시는 곳을 가르쳐 주시면,제가
안내하여 줄테니 저를 따라 오십시오'라고 이야기 하고
그를 너의 집으로 인도하면 너의 소원을 이루게 될 것이다"

꿈속일망정 덕삼은 하도 좋아

"고맙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다짐을 나누며

깨어 보니 분명한 꿈이었다. 윤덕삼은 곧 이어 뒷집에서
첫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리자 바뿌게 옷매무새를 고치고
밖으로 나왔다

나무 짐을 지고 집을 나오려 하자 어머니가 물었다
"애야,오늘은 먼동도 트지 않았는데 벌써 나가느냐?"

"네,오늘은 누구를 일찍 만나야 하기 때문에 일찍 나갑니다"

빈 속에 나무 한 짐을 지고 바뿐 걸음으로 삼십리를 걸어
자하문 밖까지 올라가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희망에 들뜬 몸이므로 배고픈 것도 무거운 것도
다 잊고 단숨에 자하문 밖에 이르러 나무짐을 괴어 놓고 보니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다행으로 여기고 먼동이 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 틈으로 하얀 버선을 신은 발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관세음보살님이 거짓말은 하지 않으셨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있는데 마침
문이 열렸다.제일 먼저 보자기로 싼 것을 머리에 인 여자가
쏜살같이 세검정으로 내려갔다.

덕삼은 나무짐과 지게를 버리고 종종걸음으로 쫓아 내려가
소매를 붙들고 꿈 속에서 일러주신 대로 하였다

"놀라지 마십시요.남녀가 유별한데 먼저 붙잡고 말하기는
실례인 줄 아오나 어디로 가는 낭자이신지 제가 길 안내를
해 드리겠습니다"

새침하게 톡 쏘고 말대답도 하지 않을 줄 알았던 그 어여쁜
낭자는 뜻밖에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저는 윤도령이란 총각을 만나려 갑니다"

윤덕삼은 너무나도 뜻밖이라 눈이 휘동그래져서 물었다.

"제가 윤총각인데요?

"네? 그러세요. 저는 심낭자입니다.그런데 어떻게 알고
나오셨나요?"

"이리 오실 줄 알고 마중 나왔습니다.간 밤의 꿈에 어떤
점잖은 부인이 나타나 말씀하시길,'너는 장안에 있는
낭자를 만나게 될터이니 잘 보살펴주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첫 닭이 우는 새벽 마중을 나오게 된 것입니다."

제게도 그런 부인이 간밤의 꿈에 나타나 말씀하시길
"네가 자하문을 나가면 첫번째로 어떤 사나이를 만날 터인데
그는 윤도령이라는 총각이다.그는 심덕이 좋아 따라가도
해롭지 않을 것이니 따라 가거라"
하시길래 그 말씀을 기억하여 여기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꿈이 같을 까요?"

"그게 다 천생연분인 까닭입니다"

"아이 망칙해라"

"망칙하기는 무엇이 망칙합니까? 세상 만물에는 다
임자가 있고,짝이 있는 법인데..."

두 사람은 초면같지 않게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나란히 내려왔다. 어느덧 절 가까이 왔다.

"여기서 잠깐 쉬어 갑시다"

덕삼은 심낭자를 관세음보살상 앞으로 인도했다

"자,우리 오늘의 일을 감사하기 위해 부처님께 절을 먼저 합시다"

절을 하려고 관세음보살님 앞에 선 심낭자는 깜짝 놀랐다

"어머나! 이분은 간밤의 꿈에 뵙던 분과 얼굴이 꼭 같습니다"

"그래서 절을 하자고 한 겁니다.우리의 인연은 관세음보살께서
맺어주신 것입니다"

덕삼은 몇 번이고 절을 하며, 감격하여 어쩔 줄 몰랐다.

"감사하니다.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관세음보살님!"

그런데 심낭자는 어찌된 사람인가? 그녀는 명문대가의 규수로
열여덟 살에 어떤 양반의 집으로 출가하였다.그러나 연분이
아니 였는지 신랑이 혼례 즉시 보기 싫다고 퇴박을 하였다.

그리하여 3년을 기다리다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돌아와
7년,10년을 동안을 수절하며 남편의 개심을 기다렸으나
아무런 소식도, 희망도 없었다.

그러니 말만 시집갔지 처녀나 다름이 없었고 그렀다고 평생토록
수절하며 혼자 지낼 수도 없었다.또 버젓이 개가할 수도 없는
처지라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어디론가 아무도 모른는 곳으로

길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딸이 불쌍하기만 했던 그의 어머니는
귀중한 금,은, 보석,산호,비취 등을 한 보따리 싸주고 눈물을
흘리면서 인연에 따라 마음대로 집을 떠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심낭자는 스물 여덟 살 되던 해에 길을 떠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날밤 꿈에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말씀하시길

"너는 다른 문으로 나가지 말고 자하문으로 나가되,
문이 열린 후 첫번째로 만나게 되는 윤총각이라는
남자를 따라가면 행복하게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를 들은 윤덕삼은 그것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실감하고
더없는 고마움과 행복을 느꼈다.윤총각은 날을 받아 일가친척을
모아 놓고 간단하게 혼례를 치루었다.

그리고 심낭자가 가지고 온 패물을 팔아 집과 논밭을 마련하고
또 산도 사서 아들 딸 낳고 평생부자로 큰 살림을 벌리니
신도면 일대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다.

그의 후손들도 역시 독실한 믿음을 가지고 근래에도 그의 5대손이
이러한 인연으로 불공기도 다니며 선조의 이야기를 전하였다.

출처/청신남 청신녀 (우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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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염불로서 불구의 다리을 고친 화엄스님

<일타스님의 글>

동해 동림사(東林寺)에는 수염을 길게 기른 화엄(華嚴) 스님이
계십니다. 이 화엄스님은 동산(東山)큰스님의 제자로서, 특별한
출가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1925년생인 화엄스님은 일찍이 일본 경도(京都)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으로 있다가, 학도병에 뽑혀 남양군으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미군들과 전투를 치르던 어느 날, 갑자기 공중에서 포탄이
떨어져 수십 개의 파편이 다리 속으로 박히는 심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 갔고, 파편 제거수술을 완벽하게 받아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도 이상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항상 저리고 아파서 올바로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절뚝절뚝 절게 되었습니다.

이 부상 때문에 제대를 하여 고향으로 오기는 했지만, 영영 불구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또 엎친 데 덮친다고, 때마침 그와 사귀던 여인마저
기숙사에 불이 나서 타죽고 말았습니다.

몸도 좋지 않은데다 마음의 상처까지 받은 그는 수양을 하기 위해
범어사 대성암(大聖庵)으로 들어갔고, 그 곳 스님들은 그에게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외울 것을 권하였습니다.

처음 심심풀이 삼아 보문품을 읽던 그는 차츰 관세음보살에 대한
믿음이 깊어졌고, 나중에는 틈만 나면 목청을 가다듬어
'관세음보살'을 염불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몇 달을 대성암에서 지낸 어느날 밤, 그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범어사 뒤의 금정산을 오르고 있는데,산 위로부터 갓을
삐딱하게 쓴 영감님 한 분이 내려오더니 대뜸 욕부터
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잇. 지지리도 쓸모없는 놈! 의사란 놈이 다리를 절뚝절뚝
절고 다녀? 침을 한 대 맞아야 되겠구먼."
영감님은 품속에서 넓적하게 생긴 대패침 하나를 꺼내서 콧김을
쐰 다음 상투에 쓱쓱 문질렀습니다.

"이리 와."
그리고 강압적으로 팔을 잡아당기더니 대패침으로 파편이 박혔던
허벅지를 꽉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구 아야!"
그는 고함을 지르며 깨어났고, 깨고 보니 꿈인데 허벅지에서
고름이 한 사발이나 쏟아져 나와 있었습니다.

고름을 닦아 낸 그는 방안을 한 바퀴 돌아보았고, 묘하게도 그토록
아프고 저렸던 다리가 멀쩡하게 나아 있었습니다.
'내 다리가 낫다니! 의학을 전공한 나의 상식으로는 믿어지지가
않는 일이다.

인간의 의술이란 대의왕(大醫王)이신 불보살의 능력에 비한다면
태양 앞의 반딧불과 같은 것! 반딧불 같은 기술을 지닌 의사가 되어
무엇하랴. 정녕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됨이 옳으리라.'

이렇게 생각한 그는 동산스님의 제자가 되어 '화엄'이라는 법명을
받았고, 그가 처음 사미계를 받을 때 내가 인계승(引戒僧)노릇을
한 인연으로 그와는 꾸준히 친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불교에는 대의왕이신 불보살들이 가득합니다.
그분들은 어떠한 병이라도 능히 고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감응이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 열쇠를 쥐고 있는가?
바로 우리가 쥐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부디 마음을 모아 기도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불보살의 밝은 자비가 우리와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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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기사회생과 관음기도

(일타스님 글)

일제시대 평양에 살았던 유제규(劉濟奎)거사는
평양교당(平壤敎堂)에 다니다가 젊은 법사인
정지월(鄭指月)스님으로부터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문득 신심이 샘솟는 것을 느낀 유제규는 보문품을 배껴 부부가
날마다 보문품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렇게 매일 보문품을 외우기를 몇 달,
1928년 12월 18일 밤의 일이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그날,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9시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유제규 거사는 매일의 일과대로 보문품을 세번 독송하고,
'관세음보살' 3천념(三千念)을 한 다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약 30분정도 숙면을 취하였을까? 비몽사몽간에 흰옷 입은
노부인(老夫人)이 나타나서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라. 지금이 어느 때인데 잠만 자고 있느냐!"

그는 정신을 차리려 하였으나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여
몸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노부인의 손을 잡고 일어나서 정신을 차려 보니,
흰옷 입은 부인은 간 곳이 없고 옆에 누워 자고 있던 아내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눈이 까뒤집힌 채 말 한마디 못하고 일그러진
표정만 짓고 있었습니다. 그는 버럭 소리를 쳐서
집안 식구들로 하여금 의사를 부르도록 하였고,
자신은 아내의 몸을 주무르고 코밑을 비벼 주고
인공호홉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아내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숨소리는 점점 더 가늘어졌고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뒤늦게 온 의사도 진찰을 해보더니,
이미 숨을 거두어 어쩔 수 없다면서 포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유제규 거사는 의사에게 주사라도 한번 놓아줄 것을 간청하였지만,
심장마비라고 하면서 돌아 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유제규 거사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하여 비통하게 울다가,
문득 보문품의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衆生被因厄 중생들이 곤란과 액난을 당해
無量苦逼身 한량없는 고통이 다다를지라도
觀音妙智力 관세음보살의 묘한 지혜와 힘은
能救世間苦 능히 세간의 모든 고통을 구해 주시도다
具足神通力 신통력 모두 갖추시고
廣修智方便 지혜와 방편 널리 닦으사
十方諸國土 시방의 모든 국토에
無刹不現身 몸을 나투지 않은 곳 없으시도다

그는 관세음보살을 외우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아내의
기사회생(起死回生)을 기원했습니다.
모든 것을 잊고 관세음보살께 매달렸습니다.

이렇게 약 30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 죽어 있었던 아내가
가늘게 호흡을 시작하더니, 정신이 드는듯 눈을 뜨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일어나 앉았습니다.

절망과 근심에 빠져 있다가 환호하는 가족들에게 유제규 거사의
부인은 말했습니다.
"사경을 헤매다가 숨이 끊어지자 혼이 공중으로 둥실 떠오르더구나.
너희들은 모두 슬피 울고 있고, 네 아버지는 나를 살려 달라며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부르더구나.

나도 엉겁결에 관세음보살을 따라 불렀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부인이 나에게 약물을 한 종지 주셨단다.
그 약물을 받아 마시자 내 혼이 다시 몸 속으로 들어가면서
숨이 통하지 않겠느냐."

유제규 처사 부부는 이토록 신기하고 불가사의한 체엄을 한다음
불교를 더욱 열심히 믿었으며, 이런 사실이 평양 바닥에만
알려지는 것이 애석하여 1929년 2월의 <불교> 잡지
제 56호에 투고하였던 것입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불보살의 가피력! 그러나 지극히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불보살의 가피가 끊임없이 미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지극하게만 해보십시오.
'나'도 충분히 가피를 입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법계(法界)에는 불보살의 자비와 묘지력(妙智力)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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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속의 관음상



중국의 당나라 문종(文宗)황제 때 일이니까 지금부터 1천 3백여년 전
일이라 할수있다. 문종황제는 불도에 귀의한 신심이 남달리 돈독한
불교 신자였다. 그는 바쁜 정사 가운데도 전국의 명찰을 순례하며
참배도 하고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또 내전에 불당을 차려놓고
거기에 관음상을 모시고 있었다.

당시 종남산(終南山)에는 유정(惟政)선사라는 고승이 있었는데
황제는 그를 몹시 존경하고 좋아했다. 특히 그를 왕사처럼 모시고
자주 초대하거나 또는 찾아가서 그의 지도를 받을 정도였다.
그리고 황제는 국가에 대사가 있을 때에는 예외 없이 먼저
궁전에 모신 관세음보살님 앞에 나아가 기도를 했다.

또 그럴 때마다 그는 관세음보살님으로부터 현몽을 얻게 되었다.
황제는 그 현몽대로 일을 처리했다. 그러면 무슨 일이나 어려움없이
순조롭게 풀리고 또 성취가 되었다.
문종황제는 불교에 귀의한 뒤로부터는 일체 고기를 먹지 않았다.
육물이건 해물이건 입에 대지를 아니 하고 멀리 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조개만은 끊지를 못 했다.

그것만은 먹지 않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개만은 그냥 수랏상에 올라오도록 했다.
어느날 아침이었다. 그 날도 아침 일찍 일어나 관세음보살 전에 가서
기도를 올리고 돌아와 수랏상을 받았다. 역시 수랏상에는
거의가 채소반찬이었으나 유독 해물로는 조개 한 접시가
올라와 있었다. 황제는 역시 조개에 먼저 손이 갔다.

벌어진 조개를 하나하나 까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까먹어 가다보니
그 가운데 껍데기가 벌려있지 않은 놈이 하나 있었다.
황제는 젓가락으로 조개를 벌리려 했으나 잘 벌려지지를 아니 했다.
그래서 할수없이 손으로 조개를 집어들고 힘을 주어 쪼갰다.
그랬더니 이게 웬 일인가. 벌어진 조개안의 조갯살이 금방
황금색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황제가 자세히 보니

그것은 관음상이었다.관음상은 서서히 광명까지 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황제는 처음 보는 일이라 놀랍기고 하고 또 알수없는 일이라서
종남산에 있는 유정선사를 불렀다. 달려온 유정선사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황제는 그 조개의 속을 그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선사님, 이 조개 속을 좀 보십시오. 짐이 아침 수라를 들다가
조개를 먹는데 그 중에 입을 벌리지 아니 하고 오무리고 있는
놈이 있기에 벌려 보았더니 이 속에 이렇게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있지 않겠습니까. 조개속에 진주가 들어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이처럼 보살님이 들어있는 것은 처음 보는 일입니다.

도대체, 이것이 어찌 된 일일까요”
유정선사도 기이한 듯 그 관음상을 드려다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폐하, 이것은 관세음보살님께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조개로
응화하신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인 것 같사옵니다.”
황제가 이에 대답을 했다.

“저도 경전에서 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불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화현을 하신다 하더라도 불신 아니면 보살신 또는
벽지불이라든가 장군신, 비구신, 비구니신, 부녀신, 동남동녀신,
팔부금강신 같은 몸으로 화현하는 경우는 있어도 조개로 화현한
조개신에 대해서는 경전 어디에서도 읽은 기억이 없고
또 일찍이 들은 바도 없습니다.”유정선사가 다시 말을 했다.

“부처님 말씀에 불보살은 백억화신을 나투신다고 하였사옵니다.
그렇다면 백억화신 가운데 어찌 조개로 나타나는 조개화신인들
없겠사옵니까. 있을수 있는 일이옵나이다”
황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 이 조개신은 누구를 제도하러
이렇게 내 수라상에 올라와 있을까.
그래서 황제가 선사에게 다시 물었다.

“선사님, 그렇다면 이 조개신, 즉 이 관음보살은 누구를 제도하기
위하여 오늘 이처럼 짐의 수랏상에 올라온 것입니까.
그것이 매우 궁금합니다.”선사가 말했다.
“폐하, 그것이 그리도 궁금하시옵니까. 관음보살은 자비로써
모든 중생을 제도하시옵나이다. 어느 특별한 생명 하나만을
제도하시고자 화현하시는 것은 아니옵나이다. 그러나
그것은 보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제도의 대상이 다를수도
있사옵나이다.”

황제가 선사의 말을 끊고 이렇게 물었다.
“그 말씀은 또 무슨 뜻입니까.”
선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예를 들면, 소승이 이 관세음보살을 보고 접하게 되면 보살님께서
소승을 제도하기 위해서 이렇게 화현을 나투시었구나 하는 생각을
할수가 있사옵나이다. 그렇게 되면 소승이 관세음보살님 앞에서
과거의 모든 잘못을 참회하고 새로운 신심을 얻을 수도 있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옵나이다.

또 이 관세음보살님을 폐하께서 보실 때 폐하께서 바로 짐을
제도하기 위해서 관세음보살님이 짐이 드시는 조개속에
화현하셨구나 생각하신다면...”
황제는 다시 선사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그리고 자기가 말을 했다.
“알았습니다. 지금 관세음보살님께서 여기 이렇게 화현하신 것은
짐으로 하여금 모든 잘못을 뉘우치고 좀더 선행을 하고
자비심을 베풀고 백성을 위해 더욱 봉사하라는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뜻을 잘 받들어 더욱 정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사가 감탄하여 말했다.
“폐하께서는 과연 훌륭한 부처님의 제자이시옵니다.
폐하께서는 관세음보살님의 설법을 아주 잘 듣고 계시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는 폐하께 바로 그러한 것을 깨우쳐 주시기 위하여
오늘 이렇게 수랏상의 조개속에 그 몸을 나투셨는지도
알수가 없사옵나이다.

부디 불보살과 같은 지혜를 발휘하시고 또한 불보살과 같은 자비를
온 백성과 중생에게 골고루 베푸셔서 창생이 환희하고
나라가 번성하는 태평성대를 누리시옵소서. 모든 백성이
폐하의 덕을 기리고 찬탄하며 존경하는 성제가 되시기를 바라옵나이다”
황제는 그 뒤부터는 조개까지도 먹지를 아니 했다.
따라서 수랏상에도 조개반찬을 올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조개 속에서 나온 관세음보살상을 산관음이라 하여
원불로 모셨다. 또한 항상 몸에 모시고 다니는 호신불을 삼기도 했다.
이와 같이 누구나 불보살을 진심으로 깊이 믿으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불보살이 그에게 화신으로 나타남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것이 신앙의 영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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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독송의 가피력/진각스님



만약 불자님들의 가정에 한 가족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어느 병원에서도 소생할수 없다는 의사의 판명이 나온다면
당장 불자님이 무엇을 할수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잘 아시겠지만 그 때는 의지가 최대한 약해 지는 시기 인지라
모두가 기독교인은 하나님에게 크리스챤은 성모마리아님에게
불자님들은 각 사찰의 불보살님에게
그리고 설령 종교가 없던 사람 마저도 어느 한 종교에 매달릴 겁니다.

【 살려 주십사 】 하고 말이죠.
그 어떤 대상을 선택하여 기적의 의지를 갈구 하려는 것이 우리 중생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어떻한 어려움에 빠졌을 때
우리는 흔히들불보살님들에게 무아의 기도를 통하여
기적같은 가피를 입어 그 어려움에서 헤어 나오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불안하고, 평상심을 잃을 때
혹은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때
그때 사람들은 기도를 할 겁니다.

다시말해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때는
기도 하려는 마음들이 없다가
본인이나 가족이 급한 경우에는 매달리려 한다는 것 입니다.

기도 정진은 불교에서는 가장 신성한 종교의례 입니다.
기도의 가피는 불보살님의 법력을 얻자는 것인데
그런 급한 경우가 아닌 매일 매일 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써 내려 가려는 이야기도
평상시에 반야심경과 108 배를 게을리 하지않던 어느 법우의 이야기 입니다.

【 묘법연화경 】 【 보문품 】에
" 선남자야, 만약에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여러가지의 고뇌를 받을 때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그 음성을 듣고 모두 해탈케 하느니라 "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의 모습이 아니라
여러 백천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 이제 그 가피력을 입은 법우의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1991 년 6 월 3 일 오후 2 시에 서울 잠수교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김 준환이라는 학생이 (당시 고대 3 학년) 구입한지 5 개월이 되는
현대 스쿠프 승용차를 운전하여 강북쪽으로 가던 중
잠수교 타널 안에서 옆의 차를 피하려다가
앞에 가던 유조차 뒷 부분에 부딪히고 튕겨져 나가
옆의 옹벽에 부딪치며 전복되어 차가 엎어진채로
20 여 M 데굴데굴 굴러 갔습니다.

유조차 운전자는 순간
큰 사고가 났음을 알고 정지 하였으며,
사고차는 유조차 앞으로 미끌어져 나갔습니다.

유조차 운전자가 내리려는 순간, 그는 기이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다름이 아닌 전복된 사고차가 안보일 정도로
하얀 모습의 커다란 부처님 형상이 차를 덮고 있는게 아닙니까?

순간, 그 유조차 운전자는 섬뜩함을 느꼈으며,
잠시후 그 부처님 형상이 없어지자 그는 차에서 내려
사고가 난 차에 가보니 차는 폐차 직전으로 찌그러져 버렸고
이상하게도 사고차의 운전자가 보이질 않는 것 이었습니다.

당시 51 세의 유조차 운전자는 운전 경력이 많은 사람이었고,
믿는 종교는 크리스챤이라고 했었습니다.

분명 이런 정도의 사고라면 운전자는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보니
운전자는 보이질 않고 옹벽 옆에서 한 학생이 책가방을 들고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유조차 운전기사가 그 학생에게 다가가
" 학생 ! 혹시 저 차 운전하던 운전자 못 보았는가? "

그러자 그 사고차를 운전하던 김 준환 학생이
" 제가 저 차를 운전했는데요 "

유조차 운전기사는 믿기지 못하여 다섯번이나 물어 보았었습니다.

정말 운전자라면 이렇게 살아 있을수가 없으며,
더구나 온 몸에 상처도 없이 서 있을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조차 기사는 그 학생이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며
사고처리를 해 주고는 그 학생의 아버지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김 준환 학생의 사고 소식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학생의 아버님에게 유조차 기사가 혹시 종교가 있으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학생의 아버지는 종교는 불교 집안 이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제서야 유조차 운전자는 자기가 본 형상이 부처님이라는 것을 알고
그 학생의 아버지에게 그 때 의 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난 뒤 유조차 기사가 김 준환 학생에게 다가가
그 사고 당시의 일이 궁금하여 물어 보니

" 사고 순간 차가 부딪히는 것을 보며
누군가가 자기를 감싸 안는 느낌을 받고 보니 차가 거꾸로 있는데
옆 유리창이 보이므로 안전벨트를 풀고책가방을 지자
누군가가 안아서 차에서 내려주었습니다 " ....그랬습니다.

자 !, 한번 생각 해 봅시다.
자동차 유리창 부분은 작습니다.
그 부분을 빠져 나오려면 멀쩡한 상태에서도 쉽게 빠져 나올수 없는 것 입니다.

당시 김 준환 법우도 회상을 할 때
" 저 창문으로 내가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 모릅니다 "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아마 이러한 일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수 없는 부분이라 여기시죠?
이것이 바로 불가에서 흔히 말하는 가피력입니다.

그 차는 결국 대파되어 폐차를 시키고 키가 181 Cm 였던
김 준환 법우는 그런 대형사고를 당하고도
큰 상처하나 없이 무사히 그 구멍으로 온 것 그것이 바로 불보살님의 가피력 입니다.

그의 가정을 잠시 소개해 보면,
그 법우는 2 대 독자로 그의 어머니 김월맹심 보살은
20 년 전 부터 시부모님의 영정을 처음 백련사로 모실때
그 인연으로 불교와 인연이 되어 불교에 귀의를 했고
백련사에서 정진하며 전국 어느 사찰이든
【 우란분절 백중 기도 천도제 】가 있는 곳이면 빠짐없이 동참하며
하루도 정진을 게을리 않고 매주 토요일이면 철야정진을 하였습니다.

그는 당시(1995 년 쯤으로 기억) 백련사 재무로 일했으며
사고가 나기 2 년 전부터 아들 (김 준환 학생)에게
매일 아침마다 【 반야심경 】을 독송하라고 하면서
절을 최하 50 번 조금 더 하면 108 배를 시켰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들이
" 법당도 아니고 부처님도 안 계신데 어디에 절을 하냐 " 고 하자
김월맹심보살님은
" 지금 네가 앉은 자리가 법당이니 그냥 열심히 해 봐라 " 고 대답 했었답니다.

아들이 성품이 착하여 어머니 말씀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마다 기도를 하고 난 뒤에 학교를 다녔다는 것입니다.

사고후 월맹심보살님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그의 집안은 늘 부유하고 걱정은 없었으며
백련사에서 기도 할 때는 특별히 원을 세운 것은 없으나
기도 중에는 '원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그저 좋은 인연이 맺어지기'를 바랐으며
사고 후 기도의 공덕을 부처님의 가피지묘력을 확신하고
기도드린 정성보다 너무 큰 가피를 입었다고 하면서 더 정진을 했었습니다.

불자 여러분.!
이와같이 기도는 어떻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삶이 기도하는 삶으로 살아가는 이 불자의 집안처럼
앞으로 닥쳐오는 불행을 불보살님의 가피지묘력으로 미리 피할수 있다는 것 입니다.

모든 열매는 열매가 맺기 까지의 과정이 있는데
그 과정도 없이 나무한 그루 탁 심어 놓고
느닷없이 열매 맺기를 바라는 멍청한 사람이 되지 마시고
그 나무를 정성스레 가꾸며 결실을 기다리는 현명한 사람처럼
늘 쉬지않고 기도정신 수행을 하시면 불보살님이 감응하시와 가피를 주실 겁니다.

즉,
부처님이나 불보살님은 어느 먼 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가운데 계신 불보살님에게 가피를 청하는 기도를 타력이라고 하겠습니까?
기도로 마음을 허공처럼 깨끗이 비워 버리면,
바로 그 마음 속으로 부처님이 자리를 하시는 겁니다.

본래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으나
그 마음이 탐진치 삼독의 때가 끼어 볼수가 없는 것이죠.

용맹정진하는 수행 속에서
몸과 마음의 때를 벗기어 내는 청소를 하는 수단으로 통하여
각자의 마음이 청정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가피를 입을수 있는 것 입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를 참고 견디는 '인욕바라밀'이 없이는
불보살님의 가피를 기대 할수도 없는 것입니다.

보통 어떤 기도를 하면 한 번 기도를 시작하고 보면
늘 수많은 장애가 따르는 법입니다.

그 장애가 생길 때 반드시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재가불자 여러분 그리고 법우 여러분 !
사람에게는 누구나 소망과 희망 이라는 것이 잇습니다.

소박하고 작은 것에서 부터
크고 위대한 온갖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다시 한번 발심하시어
우리들의 원을 실현키 위한 기도를 오늘 다시 정하여
쉼없는 용맹정진을 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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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기도로 불치의 병이 사라짐

(진각스님 글)


언젠가 광명사 신도회 총무 장상원 거사님은
당시 주소가 충북 청원시 석교동 육거리에 있는 뉴~코리아나 관광여행사이다.

몇 년 전부터 청원군 미원면 운교리에서 정미소를 하고 인삼 재배도 하며,
동네 이장도 보면서 시골에서 살고 있었으나, 얼마전 까지만 해도 청주에 나와 살았었다.

지금으로 부터 10 여년 전
장 상원씨가 간경화로 지라까지 붓고 아파서 수술도 못할 상태였다.

좋다는 약만 구해서 먹다가 병이 악화되어
다들 위험하다고 했는데 그의 형 두분이 서울에 잇으면서,
특별히 의사에게 부탁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 부터는 절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큰 아들 정 현태군이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로 와서 집안 일을 도왔다.
겨울방학이 되자 경운기로 볏짚도 실어나르고 벼짝을 메어 나르며 장정 부럽잖게 일을 하였는데
봄이 되자 오른쪽 다리가 아프고,
허리 척추뼈가 3 개가 튀어나와 학교에 못 다니게 되었다.

청주의료원에서 디스크 병으로 진찰이 나와
고치려고 두 달이 넘도록 치료를 하였으나 병은 낫지를 않았다.

대전 대학병원으로 서류를 넘겻으나 그만두고,
스님의 권유로 휴학계를 내고 약도 썼다.

여름방학이 되어 구인사로 가서 한달 기도를 하였어도 병은 낫지를 않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닥쳐왔다.

스님은 또 권유를 하여 태현군을 구인사로 한 달 기도하도록 보내고
부친은 가까운 절에서 한 달 기도를 하였다.

그러나, 장 상원씨는 동네 이장도 보고 인삼포며 방앗간 때문에
낮에는 기도를 못하고 밤에 열두시가 넘어서야 기도를 할수가 있었다.

오랜 질병에 지쳤는지 하루는 스님 보고
"나는 내년 4 월을 못 넘길 것 같다" 는 마음 약한 소리를 하더라는 것이다.

스님은 몸이 달아서 장 상원 처사님을 데리고 구인사로 가서 태현군을 만나
"너는 병을 못 고치면, 병신의 몸으로 가정을 맡아야 한다. 그러나,
너의 부친은 본인의 아픈 것에 대한 기도는 하지 않고 네 병이 낳기만 바라며
밤 12 시가 넘어서도 밤마다 절에와 너를 위하여 기도를 한다.
어젯 밤에는 내게 하는 말이 내년 4 월 까지를 못 넘길 것 같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게 급하니 네가 한달이 넘도록 기도를 하여야만이
병이 나아 너의 아버지가 너를 보고 신심이 생겨나 기도를 할 것이고 그래야 병이 나을 것이다."
라고 강조를 하였다.

장 상원씨는 아들을 보고
"병이 낫지 않으면 병신 자식 보기 싫으니 영춘강에 빠져 죽든지
집에는 오지도 말라" 고 하고서 왔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병이 낳았다.
태현군은 반가움과 두려움에 스님에게 달려 왔다.
태현군이 병은 나았지만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밤이 되어 부모와 함께 절에 온 태현군이 스님께 인사를 하니
스님은 게속 기도를 해야 한다며 다시 기도를 시켰다.

그런데 태현군이 관세음보살을 몇 번 부르더니
':쯔쯔 쫘쫘 쯔쯔 떠떠.........'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부모는 같이 관세음보살을 부르다 말고
"스님 얘가 집에서도 이런 소리를 했습니다" 하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스님은 '기도를 열심히 하면 그런 소리를 할수도 있다' 라고 말씀 하셨다.
교회에서는 이런 경우를 방언이라고 하고
절에서는 이런 경우를 변음이라고 하는데
자꾸 기도를 하다보면 과거의 업장이 들어나 없어지면서
그런말이 나오게 된다' 고 부모를 안심시켰다.

스님이 태현군이 언제 부터 그랬냐고 물으니까
태현군이 말하기를........
"스님이 다녀 가신 뒤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낮에도 부르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힘껏 뺨을 때리잖아요.
그래서 누군가 하고 돌아보니 아무도 안 때렸다는 거예요.

볼을 만져보니 분명 손가락 자욱 같은 것이 있었는데 말이예요.
그래서 기분이 나빠서 방에서 나와 대조사스님 묘소에 올라 갔더니
보살님들이 많기에 나는 한 쪽에 조용한데 가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데
또 누가 뺨을 너무 아프게 때리는 거예요.
그래서 하두 이상해서 묘소 지키는 스님에게 물어 보았더니
스님은 웃으시면서 '너 기도 열심히 하라'고 신장님이 때리시는 거라고 하셨어요.

그후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부르는데 누가
'학생 공양하러 가지' 하는 소리는 들리는데, 처음에는
관세음보살소리가 잘 되다가 ':쯔쯔 쫘쫘 쯔쯔 떠떠.........' 그러면서
아무리 관세음보살을 부르려해도 자꾸만 이상하게 변음이 나왔어요.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기도를 하였는데 언제 부터인가 다리가 안 아팠어요.


이말을 들은 부친도
"나도 이제 부터 기도를 열심히 해야겟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신심이 생겨나 남마다 잠들기 전에 꼭 관세음보살을 정진하고
낮에는 길에 다니면서도 불럿는데
하루는 꿈에 혜만스님이 :차차 &#44318;찮아 질거요" 하더라는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차도가 점 점 좋아져 농사일을 그만두고
그 뉴~코리아 관광여행사를 하고 잇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믿지 못할 이야기 같지만
관세음보살 부르다가 우는 사람, 귀신하고 싸우는 사람, 변음이 나오는 사람,들도 왕 왕 있다.

정성이 지극하면 그만큼 사람마다 다르게 신기한 일들을 경험 할수 있다.

여기서 나의 얼마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더 추가해 보고자 한다.
나는 이 곳 보성의 움막에 처음 올때만 해도
컴퓨터를 전혀 몰랐다. 크고 켜는 것조차 모르는 상태인데
얼떨곁에 컴퓨터 한 대를 보시 받고 나서
10 년 동안 비어있던 이 폐가로 들어와 홀로 책을 구입하여 보면서 컴퓨터를 공부했다.

그러다 5 개월이 지날 무렵부터
우연히 인터넷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인터넷으로 인하여 사이버사찰을 만들게 된 동기가 되었다.

나의 신기한 가피는 이때 부터 일어났다.

오늘 처음 글을 남기는데 아마 가피를 입어 보질 못한 사람들은
지금 부터 내가 적는 글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고 설마...설마...할 것이다.

하지만 원력을 입었거나 가피를 입은 재가불자들은 당연 하리라 생각을 한다.

내가 컴을 혼자 배운지 5 개월이 넘으면서 부터
홈 페이지 제작에 들어 갔다.

가피는 그 때 부터 일어나기 시작 했다.

홈 페이지를 주무르다가 분명 컴퓨터도 사람이 만든 것이니
분명 이렇게 하면 될 것도 같은데 왜 안 되지.....? 하면서
그날 밤 끙 끙 앓으며 헤메다가 잠이 들면
꿈 속에서 얼굴도 볼수없는 하얀 가사장삼을 수한 사람이 나타나
정확하게 홈 페이지를 만드는데 필요한 소스를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그럼 그 꿈을 꾸자마자 당장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그 생생한 가르침을 그대로 옮겨보면
과히 아니 놀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 가피를 무려 1 년이 넘는 동안 매일 꿈 속에서
그렇게 배워 오면서 사실 지금의 인터넷 사찰의 기본 틀이 짜여 졌다고 보면 된다.


기도란..........
죽음의 직전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들 마냥
약에 의존하지 않고 돈에 의존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이나 어디에도 의지할 데가 없고
오직 마지막으로 부처님에게만 의지하지 않으면 않되겠다고 생각 할 때
그 때야 말로 참다운 기도정진이 된 다는 것이 보통 스님들의 한결 같은 말씀들이다.

다른 잡된 생각이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오직 한 생각 관세음보살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보살님을 불렀을 때
관세음보살은 그 사람을 도와 주는 가피를 내리는 것이다.

그런 기도정진을 함으로써
불자들은 어려운 난관을 미리막고,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할수가 있는 준비가 되는 것이다.

모두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야 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닌
진실로 나는 하나의 원을 세우고 그 원에 대한 끊임없는 수행정진을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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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선사의 기도 성취

현대의 대선사 금오(金烏, 1896-1968) 스님이 젊었을 때인
1920년대 초기, 스님은 당대의 선지식인 수월(水月)스님을 뵙고
지도를 받기 위해 만주 봉천으로 향했다.
그런데 조선 땅과 만주 땅과 러시아 땅이 합해지는 회령 지방을
조금 지나 막 러시아 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마적 떼들이 어느 부잣집을 털다가 반항하는 주인을 죽인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갑자기 남편을 잃은 부잣집 안 주인은 제정신이 아니었고,
범인 검거에 혈안이 되어 있던 러시아 경찰들은 불심검문을 하다가
장비처럼 생긴 금오스님을 체포하여 그 부인에게 보였다.

"이 사람이 그 마적 떼요?"
"그런 것 같아요, 마적 떼 대장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정신이 반쯤 나간 그 부인의 말 한마디에 금오스님은 완전히
범인으로 몰려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고문을 당하면서 자백을 강요받았다.
"나는 수도하는 승려이지 마적 떼가 아닙니다."
그러나 러시아 경찰은 믿지 않고 밤낮없이 고문을 계속하였다.
그러더니 며칠이 지나자 고문을 중단하고 감옥에만
가두어 놓는 것이었다.
'웬일일까? 고문도 그만두고 감옥에만 가두어 두다니..'
이렇게 고민을 하면서 지내던 어느 날,
한국인 한 명이 그 감방에 들어왔다.
학교 선생인 그는 산골짜기에 아편을 심었다가 발각되어
잡혀 온 것이라고 하면서 물었다.
"스님이 살인 강도의 누명을 쓰고 들어온 분입니까?"
"그렇습니다."
'스님, 범인은 이미 잡혔습니다."
"그런데 왜 나를 석방시켜 주지 않는 거요?"
"아마, 이 감옥에서 나가기가 어려울 걸요?"
"왜요?"
"우선 조선 사람은 나라가 없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이
힘을 써 주지 않습니다.
설사 러시아 쪽에서 풀어 준다고 하더라도,
조선 사람이 러시아 감방에서 죄없이 갇혀 있었다는 것을 구실로
일본은 러시아에 보상을 요구합니다.
러시아로서는 공연한 말썽거리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으므로,
차라리 감옥에서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보복을 두려워한 그 부잣집 안주인이 돈을 써서
스님을 풀어 주지 못하도록 하였으니...."
'큰일났구나. 이 감옥에서 살다가 죽어야 하다니!
이토록 난감하고 억울한 일이 어디 있는가? 필경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 탈출을 하는 수밖에는 딴 도리가 없겠구나.'
금오스님은 감옥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관세음보살을 부르기 시작했다.
참선도 화두도 그만두고 오로지 관세음보살의 구원만을 갈구하며
부지런히 염불하였다.

사흘째 되는 날 밤, 어떤 사람이 철창 바깥에 나타나 감방 안을
들여다보며 주위를 살피는 것이었다.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가 쇠창살 두 개를 잡고
쑥 뽑아 올리자, 쇠창살이 그대로 빠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뽑힌 쇠창살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어 스님을 향해
'씩 -' 웃고는, 다시 쇠창살을 꼿아 놓고 사라졌다.
비몽사몽간에 이 일을 접한 금오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운데 쇠창살 두 개를 뽑아 보았다.
이상하게도 쇠창살이 쏙 뽑히는 것이었다.
스님은 감방을 빠져나와 형무소 문 쪽으로 다가갔고,
때마침 문지기들이 졸고 있어 몰래 기어 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완전히 형무소를 탈출하여 달려가다가 다리가 아파
수수밭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말을 탄 간수들이 나타나 탈옥수를 찾는 수색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스님이 다시 안전한 곳을 찾아 피해 가는데,
한 간수가 말을 몰아 쫓아오더니 잡으려고는 하지 않고
묻기만 하는 것이었다.
"탈옥수 한 명이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소?"
"보지 못했는데요."
"이상하다. 어디로 사라졌지?"
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이것이 관세음보살의 가피로구나.'
스님은 불보살님의 은혜에 크게 감격하면서,
만주 봉천의 깊은 산림 속 토굴에 계신 수월스님을 찾아가,
1년 동안 모시고 열심히 정진하였다.
금오스님은 후일 후학들을 지도하면서 그때의 일을 자주
들려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참선하는 수좌도 가끔은 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이 금오스님의 말씀처럼 참선 수행자도 장애가 있으면
한바탕 기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도를 하면서 원(願)을 새롭게 가꾸고,
가피를 입을 일이 있으면 가피를 받는 것이 좋다.
그리고 한 번의 기도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도심(道心)에 걸림이 없을 때까지 거듭거듭 행하여야 한다.
누구든지 갈등이 있으면 기도하라.
장애가 많고 공부가 잘 되지 않으면 기도를 통하여
거듭거듭 발심하라. 불보살님께서는 틀림없이 큰 힘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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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관세음보살과 의상대사

의상대사(625~702)는 원효대사와 함께 신라때 가장 존경을
받았던 유명한 고승이다
그는 문무왕(文武王) 원년(661)에 불법을 배우고자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갔다가 많은것을 깨닫고 670년에 귀국한 분이다

그는 귀국 후 관세음보살님이 머물고 계신다는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落山寺)앞 바닷가로 가서 목욕 재계하고
절벽에 있는 굴 입구를 향하여 7일 동안 정성스럽게
관세음보살 진신을 친견하기 위한 기도를 올렸다
7일째 되는날 새벽
이제 관세음보살님께서 광림 하실 때가 되었음을 느낀 의상대사는
기도할 때 깔고 앉았던 방석을 물 위에 뛰우자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들이 나타나 의상대사를 굴 속으로 인도 하였다

텅 빈 굴 안에서 의상대사는 공중을 향해 합장을 하고 절 하였다
어쩐 일인지 관세음 보살님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수정염주 한 벌만 하사 하였다
의상대사가 수정염주를 받아 가지고 굴 밖으로 나오려는데
동해의 용이 나타나 여의보주 한개를 바치는 것이었다
의상대사는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아! 나의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관세음보살님께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구나.

의상대사는 다시 7일을 더 기도한 뒤 또 굴 안으로 들어가
3일 동안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자 기도했다
그러자 드디어 관세음보살님께서 모습을 드러내고 서
의상대사를 향하여 말씀하셨다.
"그대가 서 있는 곳 바로 위 산 꼭대기에 대나무가 두그루
솟아 있을 것이다.그곳에다가 절을 짓도록 하라
의상대사는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합장을 하고 굴 밖으로 나와
산위로 올라 가보니 과연 대나무 두 그루가 솟아 나 있었다
그는 이곳이 참으로 관음진신께서 머무르시는 곳임을 확인하고는
그 곳에 터를 닦고 절을 지었다.
이 절이 바로 관음기도 도량으로 유명한 지금의
강원도 양양 낙산사(落山寺)이다

의상대사는 낙산사를 창건한 후 관세음보살님의 소상(塑像)을
조성하여 법당에 모셨는데
그 원만하고 아름다운 상호가 꼭 살아 움직이는 듯하였다.
그러자 대나무는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 뒤, 원효(元曉)대사가 관음진신을 친견하기 위하여
이 곳 낙산사를 &#52287;아왔다

처음 원효대사가 남쪽 동구 밖에 이르렀을 때였다
흰 옷을 입은 한 여인이 논에서 벼를 베고 있었다
원효대사는 농담삼아 그 여인에게 벼를 좀 달라고 하자
그 여인도 흉년이 들어서 쭉정이 밖에는 없다고
농담 삼아 말 하였다.원효대사는 좀 언짢았다
다시 원효대사는 그 곳을 지나
낙산사 쪽으로 가다가 다리가 놓인 시냇가에 이르렀다
다리 밑에서 한여인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원효대사는 그여인 곁으로 다가가서 물 한 모금을 청하였다
그런데 그여인은 깨끗한 물을 떠 주는 것이 아니라
빨래를 헹군 더러운 물을 떠 주는 것이었다

원효대사는 몹시 불쾌하여 망설일 것도 없이 얼른 그물을
버리고 위에서 다시 맑은 물을 떠서 마셨다
바로 그 때였다. 들 가운데 서 있는 소나무에서
푸른 새 한 마리가 지저귀면서 말했다.

제호(醍호,훌륭한 음료수)를 버리다니,
화상은 관음보살 친견은 단념하시오,"
그 소리를 들은 원효대사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다보니
새는 간 곳이 없고 여인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새가 울던 그 소나무 아래에 신발 한 짝이 벗겨져 있었다
원효대사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목적지인
낙산사에 도착하여 법당으로 들어가 관세음보살님께 합장하고
절을 하려는데, 관음보살상의 좌대 아래에 또 한짝의
신발이 떨어져 있는게 아닌가?
이에 원효대사는 비로소 앞서 만났던 두여인이
관세음보살님의 화현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새가 울었던 그 소나무를
관음송(觀音松)이라 하였다

원효대사는 또 전에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했던
굴 속으로 들어가 다시 관세음보살님을 친견 하고자 했으나,
풍랑이 너무 심하여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원효대사는 끝내 다시는 친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삼국유사)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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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보문사 관세음보살의 영험


강화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남해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관음기도 도량이다
이곳을 구경하고 돌아오다가 거센 풍랑을 만났으나
관음기도 공덕으로 간신히 살아난 이야기가 있다

일제 때의 일이다,근대 우리나라 불교계의 석학 중에 유명한
권상로(權相老)박사가 있다.
이분은 원래 스님으로서 훗날 동국대학교 총장까지 지냈던 분인데
이분의 친척으로서 경북 선산군 해평에서 면장까지 지낸
우용택(禹龍擇)이라는 분이 이었다

이 분이 어느 해 가을,
친구 몇 사람과 더불어 강화도 구경을 가게 되었다
그들은 강화도의 명소인 마이산과 전등사 등을 구경한뒤
마지막으로 관음기도 도량으로서 유명한 강화 보문사를
구경하지 않을수 가 없었다
그들은 삼산 나루터에서 목선을 타고 보문사에 도착하여
"굴법당 마애관음" 등을 구경한뒤 다시 배를 타고 인천으로
향하였다.그런데 인천으로 가던 중에 멀쩡하던 하늘에 갑짜기
시커먼 먹구름이 뭉치더니 빗줄기가 쏟아지면서
돌풍이 일기 시작하였다. 배는 거센 풍량에 흔들리면서
기우뚱 기우뚱했다.
갑작스러운 상항에 배를 탄 사람들은 모두 당황해 어쩔줄 몰랐다
게다가 산더미 같은 파도가 계속 배를 때리자 배는 곧
부서질듯 '우지직 우지직,하였으며 갑판위로 바닷물이 쉴새없이
넘쳐 들어 왔다. 우용택의 일행을 비롯하여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정신을 잃었다.그 중에는 살아 보려고 배를 붙잡고
안간힘을 쓰는사람,마냥 정신없이 '엉엉'우는 사람 등 갖가지였다

그런데 이처럼 급박한 상항이 전개되고 있는데,어디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간절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승객 중 한 사람이 거의 무아지경에 이른 상태로
오로지 "관세음보살"만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 사람이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이 풍량에서 살아 남기를 바란다면 모두들
한마음으로 '나무 관세음보살,을 부르십시오

그리고는 또다시 목청을 높여서 외쳤다.
"이 곳 강화에는 낙가산 보문사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영험 있는 관세음보살님이 계시니 우리가 정성을 다하여
모두 함께 관세음보살님을 부른다면 반드시 그 묘지력에 의하여
살아 돌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이 끝나자 불교를 믿는 사람은 물론이고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모두 동시에 관세음보살을 부르기 시작 하였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이것 저것 가릴 사항이 아니었다
배 안은 갑자기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합장 소리로 가득 하였다
사실, 우용택과 그 일행은 유생 이었다. 한번도 불러본적이 없는
"관세음보살"을 부르자니 선뜻 입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머뭇거리고 있는데, 관세음보살을 부르라고 하던
그사람이 우용택을 향하여 말 하였다
"노형,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부르 십시오.그러면
필히 관세음보살님의 가피가 있을 것이니 어서 속히 부르십시오"
워낙 위기일발의 상황인지라 우용택 역시 '관세음보살,을
부르기 시작 하였다.그래도 여전히 풍량은 심하게 몰아쳤다.
배는 곧 가라앉을 듯 더욱더 기우뚱기우뚱 하였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악,하고 절규하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도 정신이 들면 모두들 그승객을 따라 더욱더 소리높여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이 때 기적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높은 곳에 앉아서 "관세음보살"을 선창하고 있던 그 승객이
벌떡 일어 나더니 우용택을 향해 하늘을 가리켰다
'저것 보시오."
우용택이 그의 손짓을 따라 하늘을 쳐다보니 오색 무지개가
구름 사이로 비치면서 그 속에서 하얀 옷을 입은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이선명하게 현신한 것이었다.
배 안의 모든 사람들은'이젠 살았구나'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순간에
또다시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배를 때려 돛대를 부러 뜨렸다.
모두들 또 한번 '악'하고 절규의 소리를 질렀다

'아'이젠 정말 죽었구나.
관세음보살의 신통력도 별수 없구나.'
우용택도 이렇게 생각 하면서 너도 나도 살 궁리를 하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돛대가 부러진 뒤로는 그렇게 거세던 풍량도
점점 약해지고 빗줄기도 가늘어지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해가 나고 바다는 거의 평소처럼 정상이 되었다
배는 폭풍을 만나 몇군데 부서진 곳이 있었으나 운행에는 큰
지장이 없었고 여러 사람들이 물을 퍼내고 힘을 합하여
무사히 인천항에 도착 하였다.그야말로 몇시간 사이에
생사의 갈림길을 왕래 하다가 간신히 죽음에서 살아 난 것이었다
그 후 관세음보살님의 영험에 감탄한 우용택은 고향으로 돌아가
선산 도리사의 신도가 되었으며,자신은 물론 가족들도 모두
관세음보살님을 열심히 믿게 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당시 보문사에 와서 자주 관음기도를 올렸으며,
우용택과 친척간이었던 권상로 박사가 김대은 스님께
이야기하여 (관음신앙)에 수록하였던 것을 다시 정리 한 것 이다

"만약 큰 물결에 떠내려 간다고 할지라도
한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곧 얕은 곳으로 이르게 되는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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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의 몽중가피

-일타스님의 생활속의 기도법-

꿈은 우리 생활의 그림자요 마음의 그림자이다.
그러므로 불보살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면
낮에 먹은 마음이 그대로 연장되어 밤의 꿈 가운데
나타난다. 이것이 몽중가피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소망이 꼭 이룩되게 해주십사' 하고
지극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그 사람의 소망에 부응하는 편지 한 장을 주거나,
약을 주거나, 차를 한 잔 주는 꿈을 꾸게 된다.

이와 같은 꿈을 꾸면
자기의 소망은 그대로 성취되는데,
이를 일러 관세음보살의 몽중가피라고 한다.

곧 꿈속에서 받는 통지서는 합격 통지서요,
차를 한 잔 받아 마시거나 청심환 한 알을
얻어먹으면 몸이 좋아진다는 징조이다.
꿈 가운데 열쇠를 하나 받으면 이튿날
생각지도 않던 돈이 들어오게 된다.

불가(佛家)에 전해지고 있는 기도 영험담 중에는
삼종가피 중 이 몽중가피가 가장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약 10여 년 전의 이야기이다.
서울 미아리에 40대의 보살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전생에 닦은 복이 많아서인지 어려서부터
유복하게 자랐고
돈도 잘 벌고 가정도 잘 돌보는 남편을 만났으며,
아이들도 착실하게 공부를 잘하여 근심 없이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입안이 허는 병이 생겼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온 입안이 헐어서 음식은커녕
물조차 먹기 힘든 지경이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차도가 없고,
한의원을 찾아가니
'입안이 허는 병은 위장에서 온다'고 하며
위장약을 지어 주었으나 역시 효험이 없었다.

설상가상이라 더니,
마침내는 혀를 움직일 때마다 입안이 아파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날이 갈수록 그녀의 몰골은 여위어만 갔고,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신경만 날카로워지게 되었다.

남편의 자상한 보살핌,
아이들의 재롱도 귀찮게 느껴질 뿐 아니라.
죽음의 그림자가 그녀를 덮고 있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집 가까이 있는 절을 찾아갔다.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살려 달라고 매달리고 싶었으나,
엎드리면 이빨이 다 쏟아지는 것 같아 절도 할 수 없었다.
입안이 퉁퉁 붓고 헐어서 관세음보살을 부를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가만히 앉아 부처님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빌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제 입병 좀 낫게 해주십시오."

온 종일 부처님만 쳐다보면서 이렇게 한마음으로
빌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기를 며칠, 그녀는 꿈을 꾸었다.

그녀가 열심히 부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는데,
부처님께서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불단을 내려 오셨다.
그리고는 다기(茶器)에 담겨 있는 물을 찻잔에 가득 따라 주셨다.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 마시려는데 부처님께서 일러주셨다.

"그냥 삼키지 말고 입안에서 우물우물하다 넘겨라."

그녀는 시키는 대로하고 꿈에서 깨어났는데,
거짓 말처럼 입병이 말끔히 나아 있었다.
매운 음식, 짠 음식,
그 어떠한 것을 먹어도 입안이 아프지 않았다.

'세상에 어찌 이토록 신기한 일이 있단 말인가?'

그녀는 감격하여 불교 신문에 이 사실을 투고하였다.
글 솜씨는 서툴지만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가피력을 알리고자 투고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다급한 일을 당한 불자라면
몽중가피를 입을 때까지 일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꼭 소리를 내어 염불을 해야만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 念'자 염불(念佛). 꼭 입으로 부르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열심히 생각하면 그것이 참된 염불이요,
생각하고 매달리는 마음이 간절하면
부처님과 하나가 되어 저절로 가피를 입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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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이마의 도끼

-철원:심원사-


옛날 강원도 철원군 보개산 심원사에
묘선이라는 젊은 스님이 있었습니다.
강원 공부를 마친 지 얼마 안되는 스님은 매사에 의욕적이었지요.
어느 날, 노스님을 모시고 산책을 하던 묘선스님은
노스님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을 했답니다.

『스님,
아무래도 절이 너무 낡아 보수를 해야 되겠습니다.』

『알고 있다.
그러나 살림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어디 엄두를 내겠느냐.』
『스님, 오늘부터 제가 백일기도를 드려 불사를 하겠습니다.』
묘선 스님은 그날로 백일기도에 들어갔지요.

젊은 스님의 기도는 간곡했다. 백일기도를 회향하는 날 밤.

『묘선아, 네 기도가 그토록 간절하고 불심이 장하니
반드시 시주가 나타나 절 중창을 이루게 될 것이다.
내일 아침 일찍 화주를 구하러 나가도록 해라.
맨 처음 만나는 사람이 심원사 중창불사의 시주가 될 것이니라.』
꿈에 나타나신 부처님은 이렇게 일러주셨습니다.
잠에서 깬 묘선은 거뜬한 마음으로 길 떠날 채비를 차리곤
노스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소승 화주길에 오르겠습니다.』
『오냐, 잘 다녀오너라.』
묘선 스님이 막 산문 밖을 나서는데 왠 나무꾼 하나가
아침 일찍부터 나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지나치려다 꿈 생각을 한 묘선 스님은 나무꾼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아랫마을에 사는 머슴 박씨였습니다.
『머슴 박씨가 우리 절 중창 불사 시주가 될 수는 없을 텐데…
그냥 지나칠까.』
묘선 스님은 잠시 망설였습니다.
『아냐,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인데….』

묘선 스님은 박씨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일찍 나오셨습니다.』

『아이구, 심원사 스님이시군요. 어디 먼길 떠나십니까?』
묘선스님은 일손을 멈추고 공손히 인사하는 박씨에게
간밤 꿈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주가 되겠느냐고 물었셨지요.
박씨는 한동안 묵묵히 생각에 잠겨있었습니다.
「50평생 못 간 장가, 이제 가서 뭘하나.
차라리 그 동안 머슴살이로 모은 재산 절 짓는데 보시하여
부처님께 공덕이나 지어야지.」마음을 결정한
박씨는 기꺼운 마음으로 스님께 대답했다.
『스님께서 제게 시주가 되라는 데는 큰 뜻이 있을 것입니다.
스님 말씀에 따라 40년간 모은 저의 전 재산을 불사기금으로
시주하겠습니다.』

『참으로 고맙소. 이 인연공덕으로 다음 생(生)에 좋은 인연을
받을 것입니다.』
박씨의 시주로 심원사 불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머슴 박씨가 시주를 한 그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그만 자리에 몸저눕고 말았다.
그러나 돈을 모두 절에 시주한 박씨는 약도 쓸 수가 없었다.
주인집에서는 머슴이 일을 못하고 눕게 되자
공밥을 먹일 수 없다고 박씨를 절로 보냈다.
절에서는 박씨를 위해 극진히 간병하면서 정성껏 기도를 올렸으니
차도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병은 악화됐고, 끝내 박씨는 죽고 말았다.
마을에서는 묘선 스님이 순진한 머슴 박씨를 속여
결국은 죽게 했다고 이웃동네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묘선 스님은 더이상 심원사에 머물 수가 없었다.
절을 떠나기로 결심한 스님은
새벽예불을 올리러 법당으로 들어갔지요.
희미한 촛불 속에 부처님을 바라보는 묘선 스님의 눈에는
원망이 가득했습니다.

「가피는 커녕 시주자를 죽게 한 부처님」이란
생각을 갖게 된 묘선 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헛간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스님의 손에는 어느새 도끼가 들려 있었다.
스님은 법당으로 다시 들어가 부처님 이마를 도끼로 내리치고는
황망히 절을 빠져 나갔다.그 뒤 전국을
만행하는 묘선 스님의 발걸음은 늘 무겁기만 했다.
심원사 부처님 이마에 박힌 도끼가 빠지지 않는다는 소문은
전국에 퍼져 있었다.
그렇게 30년이 지난 어느 날.
묘선 스님은 심원사 부처님께 용서를 빌고 자신이 그 도끼를
뽑고 싶은 생각이 들어 심원사로 갔다.

절은 30년 전 불사가 중단된 모습 그대로였고 부처님 이마엔
도끼가 박혀 있었다.
묘선 스님은 참회하는 마음에 가슴이 아팠다.
마침 그 무렵 새로 부임한 젊은 사또는 돈독한 불자로서
심원사 부처님 이마의 도끼를 손수 뽑겠다고 절에 와 있었다.
법당에 들어선 사또는 삼배를 올린 후 부처님 이마의 도끼를 뽑았다.
도끼는 쉽게 빠졌다.
그 도끼를 들여다본 사또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화주 시주 상봉」도끼에는 이렇게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모습을 법당 문밖에서 바라보고 있던 묘선 스님은
그때 비로소 부처님이 머슴 박씨를 죽게 한 뜻을 깨달았다.
스님은 사또 앞으로 나아갔다.
『소승이 바로 30년 전 이 도끼로 부처님 이마를 찍은 사람입니다.
사또님의 전생은 이 절에 시주하신 머슴임에 틀림없습니다.
당시 시주를 구한 화주승은 바로 저이지요.

화주승과 시주가 인연 있어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시주 화주 상봉」이란 바로 오늘의 인연을 부처님께서
미리 계시하신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묘선 스님의 설명을 들은 사또는 이해가 가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간 일어나 스님에게 삼배를 올렸다.
『스님, 이제 멀리 떠나지 마십시오.
부처님 뜻으로 인연 맺어 스님과 제가 다시 만났으니
심원사 불사를 완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필요한 돈은 제가 시주하겠습니다.』

심원사 중창불사는 30년만에 다시 시작되었다.
묘선 스님은 심원사를 중창한 후 그 절에 오래 머물면서
큰스님이 되어 많은 신도를 교화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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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운속죄(時雲續罪)

묘향산 염선봉 절벽 위의 조그마한 암자 상원암(上元庵)에는
시운선사(時雲禪師)와 혜성(慧成)이라는 어린 동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시운선사와 절친한 친구의 아들인 혜성의 본명은 최치록(崔致祿)으로,
갓난 아이 때 부모를 모두 잃고 스님을 따라와서
이 암자에 살게 된 것입니다.

시운선사는 "내 아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 달라."는 친구의
유언대로 혜성이에게 정성껏 글과 무술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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