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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모녀의 수행이야기 -퍼온글- 반야실 2005.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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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모녀의 수행 이야기

보경당에 모셔진 쌍동이 비로자나부처님을 친견하려는 참배객들을 바라보고 나오면서
불필스님께 “스님, 저 해인사에 와 있어요. 오늘은 저희집 아이와 함께 아주 개인적으로 온
해인사행입니다.” 하고 전화드렸더니 반가움을 드러내셨습니다.
“지금 바로 오세요. 점심 공양 준비해 놓겠습니다. ”
비질이 잘 된 정갈한 금강굴 입구에 들어서니 벌써 스님께서 마당으로 나와 객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여전히 당당한, 그러나 위압적이지 않은 조용한 미소가 당당하면서도 고요한 가야산의 모습처럼 아름다우셨습니다. 퇴설당 뜰에서 멀리 가야산을 바라보면서,
“다음 생엔 대장부로 태어나 해인사 방장이 되리라! ” 하셨다는 스님이시죠.
그리고 예순아홉의 연세에도 눈빛이 형형한 분이십니다.
“자, 큰스님께서 머무셨던 방으로 가서 차 하잔 마시고 공양합시다.”

돌아가시기 직전 속가의 아버님이신 성철큰스님께서 머무셨다는 방은 조그만 불상 하나와
다탁 말고는 아무 것도 없이 아주 조촐했습니다.
“그래, 어째 이렇게 딸과 단둘이 해인사엘 오셨습니까?”
잘 우려진 차를 따라주시면서 스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저희 큰앤데,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공부하기가 힘든지 스트레스가 심한 모양입니다.
퇴설당 노스님을 뵙고 싶어 해서 같이 왔어요.”
“네가 선근이 있구나. 노스님을 뵙고 싶다했던 걸 보니.. 그래, 대학에 가선 뭘 전공하려고 하니?”
“디자인이요.”
“오, 그래 그러면 미대엘 가야겠구나. 미대에 가려면 공부도 해야 하고 실기도 해야 하니까
배로 힘이 들겠지.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은 모양이구나.."

말없이 앉아 있는 아이에게 스님이 제안하시더군요.
“민수라고 했지? 절을 좀 해보면 어떻겠니?”
절을 좀 하면 좋을 텐데.. 하셨던 종정스님의 제안을 바야흐로 불필스님께서 마무리 하시더군요.
생전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절을 숙제로 내주셨던 성철큰스님 법제자다운 가풍이었습니다.

“스님의 맞상좌인 조카 하나가 초등학교 때 이곳엘 왔기에 스님이 절을 시켰지.
그리고 돌아갈 때 하루 3백배를 꼭 하라고 일렀단다. 그 애는 스님과의 약속을 지켰고,
중학교 2학년 때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어른이 될 때까지 계속 3백배를 꼭 했다고 하더라.
그래서인지 그 아이는 아주 반듯하게 성장해서 그곳에서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지금 한국에 돌아와 활동하고 있단다. 지난여름에도 왔는데, 지금도 3백배씩 꼭 하고 있다고 하더구나.
너도 미술을 전공하고 싶다니 잘 되었구나, 그 언니처럼 절을 좀 해보지 않으련?
만약 네가 하루 삼 백배 절을 하면 꼭 네 소원을 이룰 거야. 단, 최소한 고등학교 졸업하는 날까지 해야 한다.”

저희 집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따라 절에 갔다가 종종 절을 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큰아이는 천팔십 배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 삼 백배라는 과제가 버겁게 느껴졌는지
대답을 하지 않더군요. 그러자 스님께서 얼른 그러셨습니다.
“오, 그래그래, 차 마시면서 천천히 생각하자.”
시자스님이 다과상을 내오셨는데 보니 한 치 빈틈없이 놓인 과일하며 색색의 떡들이 금강굴이 지닌 반듯함을 대변하는 듯 보였습니다. 사범학교 출신답게 스님께선 아이의 심리를 잘 알고 계신 듯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네가,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 그럴 꺼다.
민수야, 사람은 말이다.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단다. 절을 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네가 지니고 있는 그 무한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야.”
밖에 다른 손님을 배웅하려 스님이 잠시 나간 사이, 아이가 그랬습니다.

“엄마, 스님은 어쩜 내 맘을 그렇게 꼭 집어 말하실까? 내가 바로 그래. 이렇게 해봐도 안 되고 저렇게 해봐도 안 돼...”
아이의 눈에서 금방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손을 잡고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괜찮아.. 잘 될꺼야.. 울지마...”

초등학교 때 책을 읽히거나 신문에 난 기사를 얘기해 주면 어찌나 깊숙이 핵심을 잘 짚어내는지 엄마를 놀라게 하곤 했던 아이였습니다. 엄마가 자동차 접촉사고를 내고 들어와 시무룩해 있자,
‘엄마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잊어버려. 내일은 내일의 희망찬 태양이 뜨잖아..“ 하고 말해 엄마를 환하게 만들어주었던 아이였습니다. 어떤 일을 의논하면 어른보다 더 명쾌하게 해답을 주곤 해서 엄마가 마음으로 의지 했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시험성적 때문에 말이 없어지고 자신감을 잃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 생각 좀 해봤니? 지금 백련암에서 일주일 동안 삼천배들을 하고 있거든?
네가 이번에 해인사엘 오고 싶어했으니 삼천배를 할 수 있는 좋은 인연이야..“

점입가경, 하루 삼 백배를 제안하시더니, 이번엔 삼 천배를 하고 가라는 거였습니다.
“어때, 한번 해볼 수 있겠니?”
드디어 아이가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네.. 스님.. 해볼께요..”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변화하고 싶은 강한 의지를 아이는 그렇게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그래, 장하다. 네가 선근이 깊구나.. 점심 공양하고 바로 올라가서 삼천배를 하고 가거라..
삼천배를 하고 나면, 하루 삼백배는 아주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꺼야..”
아이가 삼천배를 하겠다고 하자, 스님은 서두르셨습니다.
“자, 보살님.. 점심 공양하고 어서 아이 데리고 올라가세요. 보살님도 하실랍니까? ”
“그럼요. 저도 물론 하겠습니다.”
“엄마는 자식에게 영원한 교사입니다. 엄마의 역할이 중요해요.”
영원한 교사.. 저를 반성하게 말씀이었죠..
밭에서 뽑아온 상추며 배추에 쌈장을 올려 점심 공양을 푸짐하게 잘 하고 스님과 잠깐 차를 마신 다음 백련암으로 올라가니 오후 1시 10분..

백련암으로 올라가는 차속에서 아이가 그랬습니다.
“엄마, 이번에 해인사를 참 잘 온 것 같애.. 불필스님.. 참.. 멋있다..”
“그래.. 네가 복이 있어서 스님을 만난 거야. 삼천배.. 할 수 있겠니?”
“꼭 할꺼야.. ”
저희 두 모녀는 성철스님 조각상이 모셔져 있는 고심원 법당 밖에 자리를 잡고 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심원 법당엔 절하는 분들로 꽉 차 있었고, 밖에 방석을 놓아두었더군요..

“하다가 힘들면 쉬면서 해.. 관세음보살님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들어 주시는 분이야.
네가 원하는 것을 말씀드리렴.. 꼭 들어주실꺼야.. ”

백련암에선 백팔참회문 속의 부처님 이름을 부르면서 절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은 관세음보살님을 부르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이와 함께 한 삼천배가 끝난 시각은 다음날 새벽 1시 30분.
정확히 절을 시작한지 12시간 20분만이었습니다.
“장하다! 내 딸!! ”
저는 아이를 꼭 안고 등을 두드려주었습니다.
절을 하는 중간 잠간씩 쉬고 5시쯤 저녁 공양을 한 다음 1시간쯤 방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것 말고는 크게 쉬지 않고 절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한번도 못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엄마 필을 잡은 채 절뚝거리며 계단을 내려오면서 그랬습니다.
“엄마, 나 다시는 삼천배 못할 것 같애!”
삼천배를 처음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하는 소리를 아이도 역시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삼천배라는 고지에 한 번 오르고 나면 영원한 고향(불성)을 향한 그리움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속 깊이 시원해지는 그 개운한 맛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시 하게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입니다.
신심 깊은 많은 불자분들 틈에 끼어 보름달 빛 아래서 엄마와 함께 했던 첫 삼천배 정진을!
그리고 살면서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날, 얼마나 삼천대천세계의 천신들이 자신을 내려다보며 축복해주었는지를!
그날 그렇게도 많이 불렀던 관세음보살님이 아주 오래도록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고 계심을!
그리고 자신이 처음 삼천배 고지를 점령했던 그 도량이 걸출한 도인이 머물며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삼천배를 하게 했던 곳이라는 것을!


삼백배 약속을 한 아이는 아직은 하기 싫다는 이야기 없이, 두 주가 지난 지금까지 잘 지키고 있습니다. 어제는 엄마와 절을 하고 나더니 그럽니다.
“엄마! 절을 하면 부처님 가피가 있다더니.. 난 아직 못느끼겠어! ” ^^
“그래? 엄마가 볼 땐 넌 벌써 가피를 받았는데?”
“??”
“해인사에서 삼천배를 해낸 것이 그 첫 번째 가피, 그리고 또 하나...!”
“??”
“너, 어제 엄마가 핸드폰 바꿔주었잖아..”
“어머! 그러네..”

이렇게 저희 모녀는 진정한 도반이 되었답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제 마음도 무척이나 편해졌고 무엇보다 그애를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저도 장한 딸 덕분에 가피 하나를 첨가했습니다.
아이의 고등학교 생활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하루 삼백배를 하게 된 행운을 얻은 것 말입니다.

영원한 고향을 향해 적극적 행보를 시작한 선재심보살 장민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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