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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칼럼]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천주산사 201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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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칼럼]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이제 이 물음에 대해 우리가 정직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 우리는 추상 속에서만 중국을 생각하지 현실로서의 중국을 망각하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추상은 실제와 부딪칠 때 깨진다. 우리의 추상 속에 박혀 있는 중국은 혹시 중국 여행의 기억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한창 중국 여행의 붐이 일었을 때 중국의 관광지에서의 경험이 고작일지 모른다.

한국 돈의 위력을 느낀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발마사지를 받으며 희희낙락했던 추억도 있을 것이다. 이런 중국은 이미 현실에서 사라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상하이 엑스포 개막식에 참석해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후 주석은 천안함 유족에게 조의를 표했다.

사흘 뒤 북한의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입조차 뻥긋하지 않았다. 김정일이 중국에 갔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이명박 대통령은 얼굴이 화끈거렸을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있는가!” 이미 천안함 사건은 누가 저질렀는지 묵시적으로 다 알려진 바다.

후 주석이 우리 정부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를 평가했다고 하지만 마음속에서 누구의 짓인지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북한의 김정일을 이 시점에 베이징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천안함 사건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끌어안겠다는 명백한 의사표현이다.

국제테러를 하든, 핵을 만들든 중국은 북한을 감싸안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국과 중국이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고 수백 번 되뇌어 보아도 중국은 역시 북한 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우리는 추상 속에서 중국을 관광지나 선한 이웃으로 그리고 있었지만 이런 결정적 시점에 비로소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런 중국이 날이 갈수록 더 강성해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일까? 개방을 시작해 우리의 제1무역국으로 부상하기까지 중국은 우리에게 기회의 나라였다. 우리가 1960년대 근대화를 외치고 있었을 때 중국은 문화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그 덕분에 시기적으로 우리가 20년 정도 앞설 수 있었다.

우리는 50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중국을 앞설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아니 1980년부터 2000년 정도까지 20여 년간은 긴 역사에서 오히려 예외의 시간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할지 모른다. 그 즈음 우리 수출의 제1 파트너였던 미국은 점차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것이 중국의 개방과 맞아떨어졌다. 그것이 우리에게 행운이었다. 그러나 그 행운은 오래 가지 않았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는 명실공히 중국을 세계 두 번째 국가로 만들었다. 이미 세계 질서는 G2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더 엄밀하게 말한다면 미국은 이미 정점을 지나 쇠퇴해가는 나라이고 중국은 정점을 향해 번성해가는 나라다.

우리는 미국의 덕을 보며 지내온 나라다. 미국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없었을 것이다. 안보·경제·외교·문화 모든 분야가 미국의 영향하에 있었다. 우리의 배후를 지켜주던 나라는 국제 정치에서 점차 힘을 잃어가고 대신 중국이 커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일까?

중국은 바로 옆에 붙어 있고 미국은 멀리 떨어져 있다. 중국은 또 우리와 적대관계에 있는 북한의 동맹국이다.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처지가 더 답답해질 것이라는 점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혹자는 중국의 미래가 그렇게 낙관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내륙과 해안지방의 빈부격차, 소수민족의 문제 등으로 결국 성장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개방화와 더불어 민주화의 요구는 커져갈 수밖에 없다. 중국 정치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 그럴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남이 못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비겁하면서 수동적인 태도다. 남이 안 되기를 기다리면서 스스로는 준비를 안 한다면 어리석은 민족이 될 것이다.

반면 지금 중국이 선택한 체제가 오래 가며 역사에서 하나의 새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경제에서는 시장주의를 추구하나 정치는 공산당 1당 독재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지금 중국이 번영하고 있는 것은 이 모델이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를 가장 부러워하는 나라가 러시아다.

공산주의 패망 이후 새로운 정치적 이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는 이러한 중국 모델에 솔깃해져 있다. 러시아 부총리이자 푸틴의 참모인 알렉산더 주코프는 “중국 공산당이 이룩한 성취는 매우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면서 “그들이 가진 실천적 경험을 러시아는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일 러시아가 ‘시장주의+1당 독재식’의 중국 모델을 취한다고 한다면 세계는 다시 제2의 냉전시대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북한 역시 이러한 모델을 따른다고 한다면 북한이 조기에 붕괴할 수 있다는 가설이 맞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 한반도는 어떻게 되는가? 통일은 더 멀어지며 우리는 북한과 다시 한 번 체제 경쟁을 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한민족이 중국을 앞지른 것은 지난 몇십 년간이 유일할 것이다. 그것도 남쪽의 대한민국만이 그럴 수 있었지 북쪽은 점점 더 중국에 종속되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중국으로서는 그 반쪽의 한국이 점차 껄끄러운 존재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힘의 논리로서 당연한 일이다.

대륙의 혹처럼 붙은 작은 나라 한국이 경제가 조금 먼저 앞섰다고 까분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역사적으로 중국인의 DNA 속에는 한반도는 자신의 영향하에 있다는 생각이, 자신들은 세계의 중화라는 의식이 박혀 있는지 모른다.

병자호란 후 인조가 삼전도에서 겪은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항복의 예)의 치욕, 조선 말 원세개가 조선 정부에 요구한 준칙삼단(準則三端:조선공사는 주재국에 가서 먼저 청국공사를 예방하고 함께 외무성에 갈 것, 연회에서 청국공사 뒤에 앉을 것, 중대 교섭은 청국공사와 먼저 협의할 것)을 상기하면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조선은 자신의 속국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다. 최근 몇십 년 이 의식이 잠시 잠복했던 것뿐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때 중국 유학생들이 서울에서 한국 경찰에 폭행을 가하는 시위를 했다. 이들의 시위 뒤에는 중국 정부가 있었다. 그 해 5월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한·미 군사동맹은 냉전의 산물”이라며 한·미 관계에 대해 공식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중국의 존재감은 점점 한반도에서 드러날 것이다. 천안함의 경우처럼 우리가 무어라고 항의를 하든 그들은 자기 길을 갈 것이다. 한반도, 특히 북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문제에서 중국의 협조 없이는 무엇이든 해결이 불가능하다. 아니, 한국도 자기의 영향력하에 넣으려 할 것이다. 중국은 이제 한반도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되고 있다.

한·중은 모든 점에서 비대칭적이다. 인구·국토·경제력·군사력 등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난다. 이런 거대한 제국을 옆에 두고 있다는 것은 곧 그 흡인력에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중국에 천안함에 대해, 북핵에 대해 우리가 불평을 한다고 해서 중국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우리의 처지를 핀란드와 옛 소련의 관계에 비교해 한국이 중국에 대해 핀란드화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알아서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며 살아간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런 처지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자존을 지키며 중국과 같이 대등하게 번영할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결심에 달렸다.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나라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다. 그것은 각 분야에서 현실적인 각성이 일어나야 가능하다. 경제적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중국을 앞서 왔다. 앞으로의 관건도 그것이다. 우리가 한 발짝 앞서지 않으면 중국 경제에 곧 흡수되고 말 것이다.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미국대사가 한 말이다.

“한국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중국보다 항상 한 발 앞서 있는 것이다. 중국은 대국인데도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한국은 덩치가 작은 나라인데도 늦게 움직인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우리가 반 발만 앞서 있어도 중국은 우리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고는 중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필자는 우리 기업인들의 역량을 믿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자유민주체제와 시장경제가 중국보다 더 유리하다. 저쪽이 물량공세로 나갈 때 우리는 질적인 승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역량의 핵심은 인적 자원이다. 우리는 인구 면에서 볼 때 중국의 30분의 1에 불과하다. 만일 1대1로 경쟁한다면 우리는 결코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엘리트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1명이 중국인 30명을 상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지도자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문제는 우리 쪽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중국의 리더십 충원은 내부적 경쟁을 통해 이루어진다. 공산당원 간의 경쟁이다. 우리는 민주적 방식으로 투표를 통해 이루어진다.

자연히 포퓰리즘이 지배할 수밖에 없다. 투표로 뽑는 인물과 내부 경쟁을 통해 뽑는 인물 중 어느 쪽이 더 유능할까? 우리는 그 점에 유념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어느 나라가 공정하고 깨끗한지가 경쟁을 가름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중국의 부패는 엘리트 폐쇄성에서 나온다. 이것이 나중에 어떤 형태로 번져갈지 예측할 수 없다.

한국의 부패는 민주주의의 타락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지자체장이나 검찰 부패 등은 경종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중국보다 더 부패하고 더 불공정한 사회라면 우리는 그들을 극복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방·외교다. 우리는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다. 적어도 향후 30년 후까지 중국이 미국의 군사력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에게 미국이 없었다면 중국으로부터 지금 정도의 대접도 어림 없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이런 조건을 만들어놓고 간 이승만 대통령에게 감사해야 한다. 천안함 사건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북한을 감싸고 돈다면 우리는 미국과 함께 서해에서 공동군사훈련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중국에 밝혀야 한다.

테러를 감행하는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미 연합훈련밖에 길이 없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그럴 때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 관찰해야 한다. 나라가 작을수록 결집력이 강해야 살아 남는다. 세계사는 항상 제국 위주의 시대만은 아니었다. 제국의 그늘 아래서도 자존을 지키면서 부강해진 나라가 얼마든지 있다.

17세기 스페인·영국의 대결구도에서 네덜란드는 세계 최대 무역국이 되었다. 조선 말처럼 우리가 친중·친미·친러·친일로 갈라진다면 결국 가장 가깝고 힘센 나라에 또다시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 시진평의 방한에 즈음해 오래 전에 읽었던 문창극 씨의 칼럼을 다시 보았다.

부처님은 국가, 부모, 스승, 이웃, 四恩을 말씀하셨다.
우리가 이렇게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튼튼한 국가와 낳아주신 부모와 배움을 주신 스승님, 그리고 함께 어려움을 나누며 서로를 지켜주는 이웃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항상 그 은혜를 생각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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